서울대 중동·동남아 전문가 양성한다
국내 첫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개설
서울대가 중동(서아시아)을 비롯해 동남아, 인도, 일본 등 그동안 소홀히 여겼던 지역의 전문가를 키우는데 앞장선다.
27일 서울대 인문대학장실에서 만난 변창구 학장은 “지난해 11월 평의원회의에서 인문대학의 새 학부 신설안이 통과돼 이번 학기부터 일본언어문명, 서아시아언어문명, 동아시아언어문명, 인도언어문명 등으로 구성된 아시아언어문명학부를 개설한다”고 밝혔다.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정원은 20명으로 내년부터 2학년생을 대상으로 일본언어문명과 서아시아(아랍권)언어문명 전공 신입생 각 5명씩 10명을 뽑고, 동남아시아와 인도언어문명 전공은 2014년 새 학기부터 선발할 예정이다. 교수는 기존?서울대 교수 12명과 외국인 교수 2명을 신규 채용해 학생들을 가르칠 계획이다.
변 학장은 “지난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에서도 나타났듯이 국내에 중동전문가가 없었다는 게 큰 문제였다”며 “이런 반성에서 중동을 비롯해 동남아, 인도 등의 전문가를 양성하기로 서울대 본부와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그동안 인문대학의 학부과정이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치우쳐 있었다”며 “아시아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 받는 지금 균형잡힌 인문학 교육을 위해서라도 인도, 서아시아, 동남아시아, 일본의 4개 지역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에 아시아언어문명학부가 신설됨에 따라 서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지역 연구에 관심 많았던 학생들의 욕구를 총족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각 전공별로?학생 5명을 선발해 각 지역 전문가로 키운다. 학생들은 각 지역의 언어는 물론 문학, 예술, 철학, 종교학 등을 배우게 된다. 국내 몇 대학에서도 중동, 동남아, 인도 지역의 인재를 키워 왔으나 개별 언어 교육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서울대와 교육과학기술부는 아시아 지역 연구의 중요성을?인식해 학생 10명을 증원했으며 10명은 기존의 인문대학 테두리에서 충당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 2008년 인문대학장에 부임한 변창구 교수는 오는 7월 임기를 마치고 평교수로 돌아간다.
다음은 일문일답.
– 아시아언어문명학부 개설 목적은.
“아시아 4개 지역 연구에 대한 인문학적 기초를 구축하고 현행 인문학 교육의 유럽 편중현상을 완화하기 위함이다. 또 새로운 인문학 교육연구 모델을 창출하는 한편 서울대의 국제화에 부응할 것으로 본다. 궁극적으로 중동, 동남아시아의 전문가를 양성하자는 것이다.”
– 그동안 우리나라에 중동, 동남아 전문가가 없었나.
“지난 2007년 아프간 피랍 사태에서 보았듯이 우리나라엔 언어를 비롯해 문화까지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없다.”
– 일본언어문명전공 개설 의미가 크다.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서울대에 일본어 전공 개설을 꺼려왔다. 이웃 나라이면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에 연구가 필요한 곳이다.”
– 도쿄대는 어떤가.
“도쿄대는 대학원에 조선어문화 전공과정이 개설돼 있다. 학부를 만드느냐 여부는 전적으로 그들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했으니 너희도 하라는 것은 고루하지 않나. 일본언어문명 전공은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것 뿐이다.”
– 문명이란 단어가 모두 들어갔다. 무슨 의미인가.
“언어와 문학에만 치우치지 않고 학문간의 벽을 넘어?역사, 철학, 종교, 예술 등이 한자리에서 만나는 융합적인 교육과 연구를 지향한다는 뜻이다. 기존 국내 대학들의 경우 개별 언어 교육에만 치우쳐 종합적인 인문학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 학생 정원은 몇 명이며 교수는.
“각 전공별로 5명씩 20명을 배정했다. 2학년 학생 중 일본언어문명과 서아시아언어문명 전공 10명을 먼저 선발하며?내 후년에 동아시아, 인도언어문명 전공자 10명을 뽑을 계획이다. 교수는 12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의 여건을 감안해 소속 변경 3명, 겸무 9명, 신규 임용 2명을 생각하고 있다. 신규 임용은 해당 지역 외국인 교수로 찾아보고 있다.”
– 서울대 법인화 후 인문학이 어려움에 처할 거란 우려가 있다.
“법인화 이전에도 위험은 상존했다. 법인화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갖고 있느냐가 중요할 것 같다. 자율화에 의미를 둔다면 전혀 문제 없다고 본다.”
– 입학관리본부에서 수능 시험시 국사 과목 응시 조항 폐지에 대해?의견을?듣고?있는 것으로 안다.
“인문대학 교수들은 반대하고 있다.?서울대에 입학하는 층이 너무 엷어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국사는 꼭 지키자는게 인문대학 교수들의 의견이다.”
– 교무처장 시절 서울대 학부 인원 감축이 됐다.
“그것 때문에 요즘도 가끔 안 좋은 소리를 듣는다. 당시 정운찬 총장의 뜻은 서울대가 우수한 인재를 독점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도 서울대는 사립대가 키우기 힘든 학문에 관심을 갖고 사립대가 충분히 키울 수 있는 분야에서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 취임 4년이 흘렀다. 그동안 인문대학은 외형적으로나 질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임기가 5개월여 남았다. 친구 딸이 우리 인문대학과 연세대를 두고 고민했는데 이유를 들어보니 건물이 너무 낡았다는 것이었다. 새로 짓는 것은 불필요하지만 깨끗하게 바꿀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건물을 리모델링 했다. 지금도 몇 개 동은 리모델링 중이고.
정말 신경을 쓴 것은 학생들의 교육이었다. 가용한 예산의 대부분을 상담, 진로, 글쓰기, 외국어 교육 등에 투자했다. 학생 10%는 인문학을 위해 남아 있어야 하지만 90%는 다양한 방향으로 진출하도록 독려했다. 또 AFP, IFP 등의 인문학최고위과정을 활성화시켜 경영이나 삶에서 인문학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했다.”
– 장학생 비율은 어떻게 되나.
“전체 1500여 명?중 40%가 장학생이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학비를 도와주려고 애썼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오랫동안 보직을 맡아 연구에 소홀했다. 임기 후에는 전공분야인 세익스피어 관련 책을 현재에 맞춰 번역할 생각이다. 극작품도 포함해서. 세익스피어는 읽어도 읽어도 새롭다. 인간을 가장 다양한 시각으로 잘 표현했다.”
– 그런 작품에서 자신을 보나.
“그런 부분이 있다. 문화적 산물에서 벗어난 듯 하면서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란 게 얼마나 모순덩어리인가.”
변 학장은
1951년 제주에서 태어나 경남고를 졸업했다. 1974년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털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국대 영문학과 조교수를 거쳐 1981년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로 부임해 서울대 교무처장, 한국 세익스피어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취미 생활로 경기 양평에 50평 규모의 텃밭을 일궈 주말마다 시금치, 상추 등의 채소를 키우고 있다.?슬하에 서울대에서 박사과정 중인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