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봄 백담사①] 무금선원···동안거·하안거 통해 영원한 구도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4월 초이틀, 전날 밤 진눈개비가 오고 산사의 날씨는 차갑기만 하다. 6시 아침 공양을 마치고 두툼하게 차려입은 아시아기자협회 회원 일행은 먼저 만해기념관을 둘러봤다. 백담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출가하게 됐다는 선일스님의 안내에 따라 기자들은 기념관 안팎에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찍고 싶은 대상을 맘대로 찍어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으로 고국의 기자 동료들에게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는 시대에 언론활동을 하는 21세기 기자들이다. 5년차 긴짓 파우르 스라 인도 여기자에서 50년차 싱가포르 아이반 림 기자까지 세대는 크게 달라도 만나면 “굿모닝! 하이!” 헤어질 때는 “씨 유 투모로”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누군가 묻는다. 만해기념관이 왜 이곳에 있느냐고? 선일 스님의 말씀을 제대로 듣지 않은 까닭일까?

<백담사 사적기>를 편찬한 “만해 한용운의 민족사랑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라고 짧게 답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한국처럼 일본이나 영국·러시아 등 제국주의 지배를 받은 아픔이 있어서인지 쉽게 이해한다.

만해기념관 앞뜰에는 시 ‘나룻배와 행인’을 새긴 시비와 만해 흉상 앞을 지나며 만져보곤 한다. ‘그래 만해 선생 좋은 기운 맘껏 받아서 귀국하시라’고 속삭여줬다.

1998년 백담사 옆을 흐르는 계곡을 끼고 300M쯤 올라가면 무금선원(無今禪院) 현판을 단 건물이 보인다. 스님들이 각각 3개월씩의 하안거 동안거를 하는 이곳을 둘러본 기자들은 주눅들기는커녕 “나도 해볼까?”하는 다짐을 하는 듯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춰버린 선원’ 혹은 ‘과거, 현재, 미래를 일거에 꿰뚫어버리는 선원’이라고도 해석되는 이곳에서 한계를 넘어 영원한 대자유를 성취하려는 선승들의 각오를 느끼는 듯했다.

설악산에 선풍(禪風)을 불러일으킨 무금선원은 승랍 10년 이상의 구참스님들이 용맹정진하는 무문관(無門關)과 사미승들이 안거기간 동안 정진하는 기본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문관은 말 그대로 문을 없애버린 폐문정진의 수행처를 일컫는 말로, 멀리 달마대사의 면벽 9년에서 그 시원을 찾을 수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무금선원을 비롯해 제주 남국선원, 계룡산 갑사 대자암의 삼매당, 백련사 백련선원 등 네 곳이 공식적으로 무문관을 열다고 한다.

기본선원은 젊은 스님들이 본격적인 선수행에 들어가기 전 몸과 마음에 선의 정수를 새기는, 일종의 로드워크 선원으로 ‘불교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엄격한 규율 속에 일과가 진행되고 있다.

화장실이 딸린 두 평 크기의 독방 12칸의 문은 모두 바깥에서 잠겨 있다. 하루 한번(오전 11시) 음식이 들어가는 공양구(供養口)만이 외부와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다.

여든을 훌쩍 넘기신 오현 큰스님이 매년 6개월 동안거, 하안거를 하시는 곳이 바로 이곳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선일스님의 설명에 이홍섭 시인 카페글을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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