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물건 개발자’ 박은찬씨가 폭탄주 마시는 로봇 만드는 까닭
술 마시는 로봇이 있다. 아트센터 나비가 주최한 로봇잔치에서 선보인 박은찬씨의 작품이다. 술을 마시면 볼이 빨개지고 과음했다 싶으면 술을 거절한다. 폭탄주도 거뜬히 마신다. 광운대에서 로봇을 공부한 박은찬씨는 스스로를 ‘행복물건 개발자’라고 부른다. 박씨는 재미있고 행복한 삶을 나누기 위해 로봇을 구상하고 만든다고 했다. <아시아엔>은 8월2일 핀란드로 연수를 떠나는 박씨에게 ‘박은찬과 로봇’에 대해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기꺼이 응했고, <아시아엔> 독자들께 소개한다.<편집자>
[아시아엔=박은찬 행복물건개발자, 삼성전자 소프트웨어센터 선임연구원] 로봇공학을 전공한 저는 휴머노이드 로봇대회에 미쳐 있었습니다. 직장인이 되고 나서 경쟁적인 로봇대회에 더 이상 참가하지 않게 되면서 비로소 로봇의 묘미를 깨닫게 됐습니다. 바로 대회에서 우승하기 위한 로봇이 아닌, 재미있는 로봇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경쟁이 없기 때문에 도면을 공개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일을 좋아해서 도면과 프로그램을 공개하고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설명을 하게 됐습니다.처음에는 ‘대회용 로봇’ 만드는 기법을 이용해 대중형 로봇을 제작하고 그 도면을 일반에 공개했습니다.?바로 첫 번째 공개 로봇 ‘샤크라 타이니’입니다. 대회를 출전용 로봇의 작은 버전이지요.?하지만 사람들은 도면이 있어도 쉽게 제작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청계천 세운상가 주변을 돌아본 공학도라도 로봇 제작이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로봇 ‘잭슨’은 쉽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3D 프린터를 통해 로봇 만드는 방법을 활용했습니다. 마치 프린터가 종이에 글자를 인쇄하듯 3D 프린터는 원하는 물건을 찍어낼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가 도면을 공개하면 누구나 자신의 집에서도 원하는 물건을 찍어낼 수 있습니다. 공유하기에 아주 제격인 셈이죠. 다만 플라스틱 재료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좀더 세심한 설계가 필요했습니다.
3D 프린터에 들어가는 원료는 기존의 플라스틱이라고 부르는 ABS를 사용할 수 있으나, 옥수수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PLA라는 필라멘트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친환경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잭슨은 음악을 연주합니다. 자신의 키만한 젬베를 앞에 놓고 노래에 맞춰서 박자를 두드립니다. 이 녀석과 함께 세계여행을 하면서 버스킹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세상 여러 군데를 다니며 음악으로 행복을 전달하고, 사람 형태의 로봇으로 감정을 교류하고 싶습니다.
세번째 로봇은 좀더 특이한 로봇입니다. 술을 함께 먹어주는 로봇 ‘드링키’입니다. 아내를 만나기 한 해 전 크리스마스때였습니다. 여자친구도 없고, 친구들은 여자친구 만나러 갔더군요. 나는 하릴 없이 홀로 삼겹살 집으로 향했습니다. 혼자 먹는 소주는 왜 그렇게 쓰던지요? 내 앞에 누군가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빈잔에 술을 채워주고 빈잔과 잔을 부딪쳤습니다. 건배를 한 겁니다. 그리고는 단숨에 들이켰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오묘하달까 색다른 느낌이 왔습니다. “아! 술맛은 바로 사람맛이구나!”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술을 함께 마셔주는 로봇을 언젠가 만들겠다고.
‘드링키’는 사람이 없으면 심심해 합니다. 사람이 앞에 지나가면 술을 따라달라고 조르고 손에 달려있는 술잔에 술이 차면 건배를 제안합니다. 나와 건배를 하고 나면 얼굴을 살짝 돌려 마십니다. 마시고 나서 얼굴이 빨개지고 엄지를 들어 좋아합니다. 또한 술을 저장할 수 있는 몸통이 있는데 자신이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많이 마시면 더 이상 마시지 않고 취한 척 연기합니다.
네번째 로봇은 드링키의 작은 버전입니다. 이 로봇은 아내를 위한 로봇입니다. 아내와 삼겹살에 소주를 마실 때에, 아내는 잘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나 혼자 마시게 됩니다. 술이란 따라주는 것부터 마시고, 비운 잔을 다시 따라주는 그 모든 과정일 것인데, 이것을 함께 나누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주량 정도인 딱 다섯잔만 대신 마셔주는 로봇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행복물건개발자’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에게는 3가지 미션이 있습니다. 제가 만든 물건은 타인을 행복하게 하고, 행복한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경제적 자립을 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행복물건개발자가 복제되어 세상을 이타적인 사람으로 가득 차게 만들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기술 발전이 마냥 좋기만 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기본적 욕구 충족은 해주었지만 인간과 지구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바꿔보고 싶습니다. 제가 만드는 로봇은 기능(function)의 로봇은 아닙니다. 로봇이 대신 설거지를 해준다거나 생산성을 높여주지는 않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설거지를 하고 생산성을 높이려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이미 목적은 달성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만드는 로봇은 감성과 행복을 전달하는 로봇입니다.
이제 행복한 로봇을 계속해서 만들고자 여행을 떠나려 합니다. 사람들을 넘어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을 로봇에 담아 보겠습니다. ?제 개인 블로그는?http://happyThingsMaker.com?누구나 언제나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