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도암 사망 北 강석주, 제네바 북미기본합의서 갈루치 美 대표 농락 ‘뒷 얘기’

1994년 제네바 북미 기본합의서의 체결 주역 강석주가 지난 5월20일 식도암으로 사망하여 북한은 국장으로 애도하였다.

강석주의 상대는 미국의 갈루치였다. 강석주는 갈루치를 철저히 농락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당시 김일성은 핵을 가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한 때였다. 제네바 합의로 북한은 이 고비를 넘기고 김정일은 12년이 지난 2006년 핵실험을 단행하였다. 이 위기를 넘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강석주는 영웅이 될 만하다.

제네바 북미 합의 당시 김영삼 정부는 “북핵문제는 기본적으로 미국 문제”라는 입장을 가졌다. (그러고도 경수로 제공을 위한 부담은 한국이 대부분 담당하였다.) 북한은 한국을 상대도 안 했다. 북한은 그렇다 치자. 미국도 같은 입장이었고, 김영삼 정부도 이를 수응(酬應)하는 데 그쳤다. 한반도 비핵화선언을 한 것은 1991년 12월 노태우 정부였다. 핵을 가질 수 없는 한국으로서 핵을 가지려 하는 북한을 저지하는 가장 급한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당시 미국은 북한 핵에 대한 정밀타격을 가하려 했다. 이때가 김일성으로서는 가장 속이 탄 때였다. 그런데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김영삼의 주장이었다. 김일성이 카터 전 대통령을 불러들여 김영삼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한 때가 이때였다. 당시 김영삼의 입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간단히 비교해보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면 청와대를 타격하겠다고 북한이 협박한다면 방송을 중단할 것인가? 상황은 20년 전보다 악화되었다. 전쟁은 지도자가 전쟁을 결심할 수 있어야 막을 수 있다.

서방에서 공산국가와 외교적으로 대결하여 성공한 예보다도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 1950년대의 한국전 정전협상은 대표적 예다. 정치전, 심리전에 능한 공산측은 미국의 외교, 군사 협상대상을 번번이 농락하였다. 유엔군 수석대표인 조이 제독은 <공산주의자는 어떻게 협상하는가?>에서 그 쓰라린 교훈을 요약하였다. 조이 제독은 특히 협상가로서 최고의 지적 통찰력을 가진 인물을 기용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한국측 대표로 회담에 참가한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에도 자세히 나와 있다. 백선엽 장군과 상대한 북한측 대표는 이상조였다. 이상조는 조선의용군 기장 출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조선인민군 창건에 참여하였다. 정전회담 이후 주소련대사를 지냈는데 스탈린 격하운동을 보고 소련에 망명하였다. 1989년 한국에 와서 북한의 남침 준비에 대해 폭로하였다.

최근 미국은 이란과의 핵협상을 성공시켰다. 여기에는 지난 20년 간의 북한과의 협상 경험이 도움이 됐을 것이다. 이제 한국, 미국도 북한 핵문제를 다루는데 강석주와 같은 능란한 외교관을 필요로 한다. 북한이 살기 위해서는 핵을 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당장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동결부터 시작하면 된다. 강석주가 영변 원자로는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니 경수로를 지어주면 원자로 가동을 중지하겠다고 갈루치를 설득하였던(속였던) 것 같은 노련한 협상가가 필요하다. 중국에 대해서도 북한 핵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라는 것을 설득시켜야 한다.

한국과 미국은 북한 핵을 다루는 데 있어 강석주와 갈루치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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