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협정50년-강제동원 대법원 판결①] ‘미쓰비시중공업 사건’ 대법원서 원고 승소

[아시아엔=장완익 법무법인 해마루 대표변호사] 한국 대법원은 2012년 5월 24일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 주식회사와 신일본제철 주식회사(현 신일철주금 주식회사)에 대하여 강제동원으로 인한 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하였다. 이후 두 사건의 파기환송심에서 신일본제철 원고들에 대하여는 위자료 각 1억원, 미쓰비시중공업 원고들에 대하여는 위자료 각 8천만원이 인정되었다. 이들 두 사건은 일본 기업들이 모두 상고하여, 현재 대법원에서 2년째 심리 중이다. 두 사건은 모두 1, 2심에서 패소하였다가 대법원에서 역전하여 현재 최종 판결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 두 사건의 경과와 대법원 판결 이후의 한국의 상황에 관하여 논하기로 한다.

미쓰비시중공업 사건의 경과

가. 일본 소송

일제 강점기에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되어 강제 노동을 한 피해자 6명이 1995년 12월 11일 일본 히로시마 재판소에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으며, 1996년 8월 29일 추가로 40명의 피해자가 같은 법원에 제소하였다. 하지만 이들은 1999년 3월 25일 1심에서 패소하였으며, 히로시마 고등재판소가 2005년 1월 19일 재한 피폭자를 배제해 온 일본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여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하여 이 부분은 2007년 11월 1일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그대로 확정되었으나,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하여는 최종 패소하였다.

나. 한국 소송

일본 소송 1심 패소 후 피해자들은 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는 문제를 검토하게 되었다. 한국이 민주화되어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진 1990년대 이전에는 일본에 가서 소송을 한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1970년 원폭 피해자인 손진두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건강수첩을 교부받기 위한 소송을 하기 위하여 밀항을 하여야만 하였다.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군인, 군속, 노무자 등)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1990년대 초부터 일본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전범기업들을 상대로 수많은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3건의 소송(신일본제철, 일본강관, 후지코시)이 화해에 도달하였을 뿐 나머지 소송은 모두 피해자들이 패소하였다. 당시에는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에 대하여 가장 책임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에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으며, 일본의 사법부가 제대로 판단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10년간의 소송에서 피해자들이 확인한 것은 일본의 재판소도 자신들의 피해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래서 피해자들은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주권면제(Sovereign immunity) 때문에 가능하지 않은 것이어서 군인, 군속 피해자는 아예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며, 일본 전범기업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들만이 이들 기업들을 상대로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였던 피해자 중 5명과 새로운 피해자 1명 등 6명의 피해자들이 2000년 5월 1일 부산지방법원에 미쓰비시중공업을 피고로 하여 강제노동에 대한 손해배상과 미불임금의 지급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당시 미쓰비시중공업의 연락사무소가 부산에 있어서 부산에서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 소송에서 미쓰비시중공업은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하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원고들의 청구권이 소멸되었다는 주장을 하였다. 그래서 원고들은 청구권협정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확인하기 위하여 사실조회와 문서송부촉탁신청을 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외교상의 문제라며 답변을 거부하였다.

이에 원고들을 포함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정식으로 외교통상부에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를 요청하였으나 외교통상부가 이를 거부하여, 부산 소송을 잠시 중단한 상태로 2002년 10월 11일 서울행정법원에 한일협정 문서의 공개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문서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2004년 2월 13일 5건의 청구권협정 문서의 공개를 명하는 1심 판결이 나왔으며, 이에 대하여 양 당사자가 모두 항소하였다. 그런데 항소심 진행 중에 정부 측이 한일회담 관련 문서 전부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하여 양측은 항소를 취하하였다.

정부는 판결이 확정된 후 바로 5건의 청구권협정 관련 문서를 공개하였으며, 아울러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한일회담 문서를 어느 범위까지 공개할 것인지를 검토하여 2005년 8월 26일 거의 모든 한일회담 관련 문서를 공개하고, ‘한일회담 문서공개 후속대책 관련 민관공동위원회(이하 민관공동위원회)’를 통하여 청구권협정의 법적 효력 범위, 한일협정 협상 당시 한국정부가 일본정부에 대하여 요구했던 강제동원 피해보상의 성격 및 무상자금의 성격, 1975년 한국정부 보상의 적정성 문제, 정부 지원 대책, 일제 강점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외교적 대응방안 등에 대한 정부 의견을 발표하였다.

정부 지원 대책을 법제화한 것이 ‘태평양전쟁 전후 국외 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2007. 12. 10. 제정)이며, 이 법률에 의거하여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국외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2,000만원의 위로금을, 부상으로 장해를 입은 피해자에게는 300만원에서 2,000만원까지의 위로금을, 일본 정부나 일본 전범기업 등으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었던 급료, 여러 가지 수당, 조위금 또는 부조료 등을 지급받지 못한 피해자에게는 1엔을 2,000원으로 환산하여 미수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문서공개거부처분취소 소송은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으나, 이후 속행된 미쓰비시중공업 소송에서 원고들은 2007년 2월 2월 패소하였고(한국에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하였던 원고 1명이 항소하지 않아 항소심부터는 5명의 원고가 소송을 진행하였다), 2009년 2월 3일 항소마저 기각되었다. 그런데 대법원은 1, 2심과 다른 판단을 하였고, 파기환송심은 대법원의 취지대로 원고 승소 판결을 하였으며, 미쓰비시중공업의 상고로 현재까지 심리중이어서 확정 판결이 나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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