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초대 주한대사, 4년 임기 마치고 떠나던 날
네팔의 초대 주한대사인 카말 프라사드 코이랄라(Kamal Prasad Koirala, 74세)가 4년 간의 임기를 마치고 2월7일 본국으로 귀국했다. AsiaN은 기자, 변호사, 정치인, 외교관, 수상의 아들인 그의 열정적인 삶과 함께 한국에서의 마지막 24시간을 취재했다.
-한국으로 처음 발령받는 네팔 최초 주한 대사가?됐을 때 어땠나.
“설레기도 하고 책임감도 많이 느꼈습니다. 그전에는 일본에만 대사관이 있었어요. 한국이 무척 중요한 나라인데도 말이죠. 처음 한국에 부임하는 만큼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지요.”
-한국의 첫인상은.
“힌국 사람들이 무척 친절하다는 것에 놀랐어요. 다만 세대차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친절함에 세대차이가 있나.
“나이드신 분들은 외국 사람을 무서워하거나 수줍어서 피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외국 사람들을 대하는 데 있어서 거리낌이 없고 자신감이 느껴져요. 아마도 일제 식민지 시대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제 강점기를 직접 경험한 세대는 외국인에 대해 배타적일 수 있지요.”
‘석가모니 출생지 인도’라는 한국 역사책에 충격, 부처 고향은 ‘네팔 룸비니’
-한국 역사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셨나 보다.
“부임하는 국가에 대해서 공부를 하는 건 당연한 것이죠. 그런데 한국 역사책마다 석가모니의 출생지가 인도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그건 완전히 잘못된 정보에요. 부처의 출생지는 인도가 아닌 네팔의 룸비니에요. 역사적으로 아쇼카왕의 석주도 증명하고 있고 유엔사무총장인 우탄트, 유네스코 등의 기관도 분명히 확인한 사실이에요.”
-그런데 왜 인도라고 잘못 알려진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우선 불교 4대 성지 중 룸비니를 제외한 다른 3곳이 모두 인도에 있어요. 그리고 룸비니가 인도-네팔 국경 지역에 있다는 것도 원인이 된 것 같고 숲이 울창한 지역이어서 사람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요. 영국이 인도를 식민 지배하던 시절 영국 사학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전세계로 퍼져 나갔어요. 잘못된 영어 자료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부처의 출생지가 계속 잘못 알려진 거죠. 이에 대해 작년에 이명박 대통령께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한국 교과서에 잘못된 정보가 있으니 수정해 달라고.”
-답을 받으셨나.
“올해는 이미 교과 과정 계획이 다 끝났고 2013년도 교과서부터 수정이 된다고 하더군요. 교과서 내용을 고친다는 것은 단순한 작업이 아닌데 대통령뿐만 아니라 교육부, 문화부에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여러 부처의 협력이 필요한 작업이니까요.”
-네팔 대사로서 큰 일을 하셨다.
“네팔 사람이라면 누구나 룸비니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죠. 선친은 우탄트 유엔사무총장 시절에 유엔 대사를 지내셨는데 우탄트는 룸비니를 인정한 첫 유엔사무총장이예요. 사진을 한 장 보여 드릴께요. 오른쪽이 우탄트, 왼쪽이 저희 아버지, 어머니시죠. 아버지는 케네디 대통령 시절 주미 대사를 지내셨죠.”
-귀한 사진이다.
“더 재미있는 사진도 있어요. 이건 1950년대에 아버지, 삼촌 등 코이랄라 형제 5명이 함께 찍은 사진인데 이 중 3명이 네팔 총리가 됐지요.”
-총리가 3명 나왔다?
“맨 왼쪽이 G. P. Koirala, 네팔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셨던 총리였고 그 다음이 T. P. Koirala, 가운데가 K. P. Koirala,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B. P. Koirala, 네팔 최초선거로 총리가 되신 분이고 맨 오른쪽이 M. P. Koiala, 제 아버지세요. 아버지가 가장 먼저 총리가 되셨고 그 다음이 B. P. Koirala. G. P. Koirala는 1990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 총리가 되셨죠. G. P. Koirala 같은 경우는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했는데 이 사진은 민주화 투쟁 당시 제가 찾아갔을 때 찍은 거에요.”
-대사님 가문은 네팔의 살아있는 역사다.
“한 형제들 가운데 총리가 3명 나오는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것 같습니다. 한국도 복잡한 현대사를 겪었지만 네팔도 민주화 운동, 왕정 종식 등 많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 면에서 한국과 네팔이 공통 분모도 많고 서로 공감하는 부분도 많다고 봅니다.”
-한국과 네팔이 서로 비슷하다면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가 쉬웠을 것 같다.
“한국에 부임해서 별로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특별히 한국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영양학적인 측면에서도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요. 한식을 먹으면 김치 뿐만 아니라, 콩나물 무침 등 채소를 굉장히 많이 섭취하게 되죠. 게다가 젓가락으로 조금씩 먹게 되니까 자연히 소식하게 되고. 젓가락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날씬한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젓가락 때문에 날씬하다, 새로운 이론이다. 특별히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있나.
“한국 음식은 다 좋아하지만, 네팔 가면 삼겹살이 가장 많이 생각날 것 같네요. 삼계탕과 비빔밥도 생각날 것 같고. 한국에 같이 온 딸 같은 경우는 김밥을 좋아해요. 배고플 때 금방 한 두줄 싸 달라고 하면 허기가 가시거든요. 한국식 패스트푸드인 셈인데 서구식 패스트푸드와는 달리 영양학적으로도 아주 훌륭한 식품이죠.”
-한국에서의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특별한 에피소드라기 보다는 처음에 한국말을 몰라서 슈퍼마켓을 들어가면 한참 동안 헤맨 일 등이 있죠. 지금은 달걀, 설탕, 소금 등 간단한 말은 다 할 수 있어요.”
-한국어를 따로 배웠나.
“배우려고 노력은 했었는데 나이가 워낙 많아서인지 빨리 늘지는 않더라구요. 한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기도 하고 또 요즘 네팔인들 중에서 한국어를 잘 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언어로 인한 불편함은 없었어요.”
-한국어를 배우는 네팔인들이 많은가.
“아주 많죠. 네팔에서도 한류 열풍이 대단하거든요.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계속 보면서 대사를 따라하다가 한국어를 저절로 깨우치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이죠. 저도 한국 드라마, 영화 등을 참 많이 봤어요.”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도 있나.
“많이 있는데, 이름을 외우기가 힘드네요. 얼굴을 보면 알 것 같은데. 아, 김연아는 얼굴도 알고 이름도 알아요.”
-한국에서도 네팔로 여행가는 사람들이 많다.
“관광업은 네팔의 중요한 산업이죠. 네팔하면 히말라야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네팔 국토는 산악 지대, 평지 지대, 산악과 평지의 중간인 구릉 지대 등으로 나눌 수 있고 각 지대마다 다채로운 풍광과 변화무쌍한 날씨를 경험할 수 있어요. 정글 사파리도 아주 인기있는 여행지에요.”
-네팔과 정글… 바로 매치가 안 되는데.
“그렇다니까요. 네팔에는 히말라야만 있는 게 아니에요. 꼭 한 번 네팔로 놀러 오세요.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에요. 관광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한국인들이 자선, 봉사 활동 등으로 네팔에 많이 와요.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네팔 시골 지역에 계속 학교를 짓고 있어요. 아, 우리가 처음에 이야기를 나눈 룸비니에도 엄 대장이 학교를 짓고 있죠.”
-네팔과 한국의 교류가 늘고 있는 시점에서 하실 말씀은.
“저는 4년 동안 행복한 대사였습니다. 한국인들의 친절과 배려에 감사 드리며 이 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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