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홍의 인물탐구 이길여 가천대총장④] ‘장수학 대가’ 박상철 박사 영입 ‘뇌과학’ 연구집중

[아시아엔=장규홍 채널인(Channel In) 대표, 전 SBS CNBC 보도본부 부장] 이길여는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사람이다. 미국 하와이의 글로벌 캠퍼스를 만들 때도 밤새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다음날 비행기 표를 끊어 현지로 날아가 진두지휘를 하고 돌아오곤 했다. 미국 각지의 우수한 교수진을 영입할 때도 수천 킬로미터를 마다 않고 구석구석의 대학과 연구소를 직접 찾아다니며 그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했다. 이 총장이 삼고초려 끝에 모셔온 가천대 의대 뇌 과학 연구소장 조장희 박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스웨덴 웁살라 대학에서 핵물리학을 연구한 조장희 박사는 세계 최초로 원형 양전자 방출 단층촬영장치(Ring PET)를 개발했으며, 이 분야 연구 환경이 가장 좋은 곳 중의 하나인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UC 어바인) 교수로 있었다. 처음 이길여 총장의 영입 제의에 대해 조장희 박사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조 박사는 한국에선 아직 막대한 투자비용이 들어가는 뇌 과학 연구 분야가 시기상조라는 생각에 한국행을 망설였다. 하지만 이길여 총장은 애국심과 비전을 내세워 결국 그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000억 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수준의 뇌 과학 연구소를 만들었다. 미국 최고 권위의 학술원 정회원이기도 한 조장희 박사는 한국인 가운데 노벨상 수상에 가장 근접한 인물로 평가 받기도 한다.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가천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장 박상철 박사도 이 총장의 끈질긴 설득 끝에 영입할 수 있었다. 박상철 박사는 인간의 수명을 120세, 나아가 150세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펴고 있는 국내 장수학의 대가다.

수명 연장에 따라 뇌 과학 분야는 이 총장의 최대 관심 사항이다. 거의 모든 장기이식이 가능해졌고 암에 대한 연구와 치료법이 크게 발전한 데 비해 뇌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는 게 이길여의 생각이다. 이 총장이 그리고 있는 뇌 과학 분야에 대한 원대한 청사진은 알츠하이머와 파킨슨병, 뇌졸중, 뇌경색 등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세계 최고의 연구실적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자 : “이 총장께서 뇌 과학 분야에 특별히 관심을 쏟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또한 가천대학은 국내에서 드물게 의대와 약대, 한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어떤 시너지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이길여 : “제가 50년 넘게 의사를 하면서 앞으로 의료의 핵심은 뇌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암이나 당뇨 같은 질환도 있지만 앞으로 난치병의 60% 이상이 뇌와 관련이 된다고 봅니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노령인구가 증가한다고 볼 때 뇌 질환과 관련된 의학수준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지 않고선 머지않아 사회적으로 큰 어려움을 맞게 될 겁니다. 대한치매학회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치매 인구가 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숫자를 감안한다면 엄청난 잠재 환자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세계적인 뇌 과학자인 조장희 박사를 여러 차례 설득 끝에 모셔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또 뇌 과학뿐만 아니라 독자적 신기술을 보유한 선진 의료기관이 되기 위해선 신약 개발 등을 맡을 약학대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지요. 우리 연구 역량이 좀 더 커지면 의대와 약대, 그리고 한방 분야까지 협진체제가 이뤄지면서 모범적이고 선도적인 의료시스템을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서양 유수의 의료기관도 갖추지 못한 한양방 협진시스템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노인 인구의 급증에 따라 뇌혈관질환자의 숫자는 빠르게 늘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치매 증가율은 212%를 넘었고 파킨슨병의 증가율도 83%에 이른다. 서울대병원 통계에 따르면 2012년 65세 이상 인구의 치매 유병율은 9%이지만 오는 2050년엔 13%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2005년 436만 7천 명에서 2010년 535만 7천 명으로 22.7% 증가한 데서 보듯이 급증하고 있는 노령인구와 뇌 과학의 미래는 향후 대한민국의 사회복지와 사회안정에 밀접한 연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총장은 이 분야에 대한 투자와 지원에 열정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세계 수준의 연구 중심 대학(WCU)’ 사업으로 선정한 가천뇌과학연구소, 이길여 암·당뇨연구원, 바이오나노연구원 등 3대 연구소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석학과 권위자들의 영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길여 총장이 꿈꾸는 원대한 계획의 핵심은 바로 뇌 과학이다. 미국 텍사스 대학 MD앤더슨 암센터 시절 ‘미국 최고의 의사(The Best Doctors of America)’에 두 차례 선정된 김의신 박사는 ‘암 방사면역 검출법의 개척자’로 불리는 핵의학 전문가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인슐린 분비세포를 이식하는 췌도 이식에 성공했던 당뇨내분비센터장 김광원 교수는 내분비 내과의 권위자다. 이밖에 영상의학 분야의 이숭공 교수, 박재형 교수, 바이오나노 분야의 이은규 박사 등이 이길여 총장이 공을 들여 영입한 인사들이다. 의학 분야 외에도 연기예술학과에 원로배우 이순재 석좌교수, 교양학부에 언론인 출신 오대영 교수 등 수많은 전문가들이 속속 ‘이길여 플랜’에 동참하고 있다.

약학대학을 유치하는 과정에서도 이길여 특유의 도전정신과 승부사 기질이 발휘됐다. 의대와 의료 분야 육성의 필수 기초 학문인 약학대 유치를 위해 수도권 유수의 대학들이 학교의 명운을 걸고 경쟁을 벌였다.

당초 학계와 의료계의 예상과 달리 이길여는 당찬 도전과 뜨거운 열정을 불사르며 결국 약대 유치에 성공했다. 여러 부처와 기관을 찾아다니며 약대 유치의 필요성, 향후 계획, 비전 등을 설명했고 상대의 반응이 시원치 않으면 밤을 새가며 자료와 대응논리를 새로 만들어 부딪치고 또 부딪쳤다고 한다.

가천길재단의 설립 이념은 박애, 봉사, 애국이다.

기자 : “의료기관이나 교육기관의 이념으로서 애국은 좀 생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국을 중시하는 어떤 특별한 배경이 있습니까?”

이길여 : “제가 6·25전쟁 나던 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때 또래의 남학생들은 전쟁에 징집돼서 전쟁터로 많이 나갔지요. 대부분은 돌아오지 못했고요. 전쟁터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동료, 친구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 보답하는 마음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의사가 돼서도 그 친구들 몫까지 해야겠다는 생각,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늘 자리 잡고 있지요.”

열여덟 시절의 이길여와 전쟁에 징집된 남학생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 젊음들 사이엔 이루 말할 수 없는 사연과 아픔이 얽혀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이길여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특별한 일이 아니고선 자택을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학군사관(ROTC) 학생들을 1년에 한 번씩 단체로 집에 초대해 푸짐한 음식을 차려준다. ROTC 생도들이 군사학교에서 훈련을 마치고 임관식을 할 때면 언제나 성남의 육군학생군사학교로 달려가 일일이 그들을 포옹해 준다.

이길여 총장이 그 어느 것보다 앞세우는 가치인 애국심, 그리고 전쟁을 치르면서 나라를 지키겠다고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동료들에 대한 의리와 보답은 아직도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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