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규홍의 인물탐구 이길여 가천대총장③] 총학 출범식 참석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 돼야”
[아시아엔=장규홍 채널인(Channel In) 대표, 전 SBS CNBC 보도본부 부장] 1978년엔 전 재산을 출연해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종합병원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했으며, 1994년 신명학원을 인수하면서 교육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의료사업을 하다 보니 인재양성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위해선 교육에 힘을 써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고 이 총장은 말했다.
가천의과대와 경원대의 통합으로 탄생한 가천대학은 2012학년도 입학정원만 3,880여 명으로 수도권에서 세 번째로 큰 규모다. 이길여는 초대 총장을 맡아 ‘G2, N3’란 슬로건을 내걸었다. 2개 분야에서 세계 1위, 3개 분야에서 국내 선두가 되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주로 의학 분야, 그 가운데서도 뇌 과학 분야가 ‘세계 톱’을 지향하고 있다.
사재를 포함 1,600여억 원을 학교에 투자해 뇌 과학 연구소와 암·당뇨 연구원을 설립하는 등 이길여의 도전은 쉼 없이 계속되고 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를 강조하는 이길여 총장에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물었다.
기자 : “가천길재단의 로고에 바람개비가 그려져 있고, 이 총장이 쓰신 저서 제목도 ‘아름다운 바람개비’입니다. 바람개비는 이길여 총장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이길여 : “어린 시절 동네에서 수수깡으로 만든 바람개비를 많이 갖고 놀았어요. 바람개비는 구조상 맞은편에서 바람이 세게 불면 잘 돌아가고 바람이 없으면 멎어버리지요. 어떤 애들은 바람이 불지 않으면 포기해버렸지만 저는 바람이 안 불어도 산 위에라도 올라가 뛰어 내려가면서 맞바람으로 바람개비를 돌리고야 마는 그런 성격이었어요.
어려운 상황일수록 정면으로 도전해 바람개비를 돌려야 한다는 그런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요즘 지치고 낙담하는 젊은이들에겐 그런 정신을 꼭 불러일으켜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 총장은 그러면서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나는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나무 심는 사람들’에 나오는 내용으로 한 인간의 꾸준한 희생과 헌신으로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숲을 완성했다는 것인데, 개인의 자질과 능력이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를 위해 쓰일 때 그 사회는 건강하게 발전한다는 교훈이다.
또 하나는 도가 경전의 하나인 ‘열자(列子)’ 탕문(湯問) 편에 나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다. 어리석어 보이는 일이라도 한 가지 일에 몰두하여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영어속담과도 뜻을 같이하는 깨달음이다.
이길여는 이처럼 다른 사람이 불가능하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에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결국은 그 일을 수행해 내고야 마는 도전정신과 의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보인 일평생을 살았다. 그래서 그가 일궈온 업적은 대부분 전인미답(前人未踏)의 신기록인 경우가 많다.
당초 경원대와 가천대, 두 대학의 통합에 대해 반대하거나 내부갈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 총장은 몇 년에 걸쳐 대학 통합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이 총장과 인터뷰를 하면서 캠퍼스 곳곳을 돌아보고 학생과 교직원들을 만나본 결과, 열정과 추진력을 앞세운 총장의 리더십에 대해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신뢰는 단단했다. 그래서 총장과 마주친 학생들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캠퍼스 곳곳에선 건물 신축이나 시설 리모델링이 이뤄지고 있었고, 학생들은 하루가 다르게 첨단 설비와 장비가 늘어가고 있다면서 이길여 총장이 학생들과 약속한 발전방안은 반드시 실현될 것으로 믿는다고 입을 모았다.
인터뷰 도중 때마침 중앙광장에선 총학생회 출범식이 열리고 있었다. 이 총장은 예정에 없이 연단에 올라가 즉석에서 마이크를 잡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학생들은 총장의 선창에 맞춰 힘차게 구호를 따라 외쳤다. 최루탄이 난무하던 1980년대, 이데올로기가 과잉됐던 1990년대 회색빛 대학 캠퍼스에선 찾아볼 수 없던 신선하고 발랄한 장면이었다. 학생들의 박수소리나 표정에서 총장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 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