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완종, ‘난장정치’의 희생자인가 가해자인가?

[아시아엔=박은주 조선일보?디지털뉴스본부 부본부장] 얼굴을 알지만 만난 적은 없다 했다. 만나긴 했지만 친하지는 않다 했다.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도 아니고 다들 ‘부인(否認)’ ‘부정(不定)’이다. 심지어 이완구 총리는 15일 “단 한 푼이라도 받은 게 밝혀진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했다. 망자(亡者)의 메모가 대한민국 ‘넘버 2’의 명(命)까지 쥐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이완구 총리의 목숨을 갖고 어쩔 생각이 전혀 없다. 그저 ‘진실’을 바랄 뿐이다. 그런데 검찰이 어떤 진실을 밝혀낸다면 그게 과연 ‘온전한 진실’일까? 이완구·김기춘·허태열·홍준표 등이 ‘베드로’가 아니듯 성완종 역시 ‘대속(代贖)’한 예수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망자에게 너그럽다. 부음 기사를 보자. 말만 많았던 이는 ‘활달한 성격’, 독선적이었던 사람은 ‘강직했다’고 표현한다. 그건 누군가의 인생을 봉인(封印)하는 작업이다. 그로써 관은 꽉 닫히고, 망자는 더 이상 현실 세계에서 작동(作動)하지 않는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9일 북한산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을 때 언론은 그를 ‘자수성가한 기업인’으로 예우했다. 이 정부의 무리한 사정(司正) 공세가 결국 ‘콜래트럴 대미지(부수적 피해)’를 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친박(親朴) 핵심들에게 돈을 줬다는 그의 생전 인터뷰가 공개되며 상황은 급변했다. 그가 죽어서 정치를 재개(再開)한 것이다.

이제 ‘망자에 대한 예우’ 대신 ‘실체적 진실’을 추궁할 때다. 그에 대한 미화는 상황에 눈멀게 하고, 폄훼 역시 진실에 눈감게 한다.

성 전 회장의 이력을 보면 기업 돈으로 권력을 사고, 그 권력으로 다시 곳간을 메우려 한 흔적이 보인다. 그는 2002년 지방선거 때 불법 정치자금 16억원을 건네 징역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가 2005년 사면받았다. 또 행담도 공사 시공권 대가로 관계사 사장에게 120억원을 무이자로 빌려줬다가 2007년 징역 6개월에 집유 1년을 받았으나 또 사면됐다. 2012년 4월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1000만원 불법 기부 사실이 적발돼 의원직을 상실했다. 세 번째 사면·복권을 위해 많이 뛰었다는 증언이 나온다. 이번 비리 수사팀이 성씨의 자원 비리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자 개인 비리로 몰아간 것은 ‘표적 수사’로 보일 만하다. “억울하다”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그렇다고 “결백했다” 해서는 곤란하다. “외제 차도 안 탄 사람”이라는 게 ‘결백’과 이어지는 주장은 아니다.

고인의 측근은 “정치인 150명에게 150억원을 뿌렸다더라” 했다. 정가에서는 “성완종의 소속 정당은 (시대를 막론하고) 여당”이라고 한다. 그의 주변에는 돈을 받고 도움을 준 사람과 돈을 받고 도움을 주지 않은 사람 등 두 종류의 ‘유력자’가 있었다. 이번에 공개된 인사들은 후자에 해당하는데 그보다 더 나라에 해악을 끼친 전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죽는 자가 반드시 진실만 말하는 건 아니다’는 걸 우리는 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망자의 메모를 진실이라 믿거나 믿고 싶어한다. 우리 정치가 ‘인간관계’라 부르는 ‘비리 사슬’로 움직이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런 만화를 봤다. 남녀가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나는 정치인이야. 정직해.” “저는 몸을 팔아요. 그런데 처녀예요.” 한국 정치가 딱 이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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