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특별기획] ‘헝그리 아티스트’ 요람 문래동·성수동···스페이스413·스튜디오창고

문래예술공장 전경. 문래예술공장은 ‘문래예술촌’과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센터로 옛 철공소 자리에 2010년 1월 28일 개관했다.
문래예술공장 전경. 문래예술공장은 ‘문래예술촌’과 국내외 다양한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센터로 옛 철공소 자리에 2010년 1월 28일 개관했다.

‘잿빛 공장지대, 찬란한 예술로 승화’

[아시아엔=글 최정아·사진 라훌 아이자즈 기자] 수십년간 서울의 대표적인 공장지대였던 영등포구 문래동과 성동구 성수동이 최근 몇 년 새 예술마을로 대변신하고 있다. 척박한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예술혼을 불어넣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엔>은 서울의 ‘뉴욕 브루클린’이라 불리는 문래동과 성수동을 찾았다.

문래동은 서울시 공식관광정보사이트(Visit Seoul)에 소개될 정도로 국내외 수많은 이들이 찾고 있는 ‘서울 대표 예술촌’이다. 문래예술촌 입구에 들어서면 너트로 만든 예술촌 지도와 거대한 망치 조각상이 눈을 사로잡는다. 문래동은 본래 1960년대부터 중소 철공소 밀집지역으로 유명했다. 2000년대 초 도심재개발 사업으로 철공소가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한 이곳은 2003년부터 대학로와 홍익대 인근에서 활동하던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비어있는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10년 남짓이 흐른 지금, 이곳은 서울을 대표하는 예술촌으로 꼽힌다.

너트로 만든 문래예술촌 지도. 철공소 밀집지역인 문래동의 분위기를 한눈에 볼 수있다.
너트로 만든 문래예술촌 지도. 철공소 밀집지역인 문래동의 분위기를 한눈에 볼 수있다.

“여기가 철공소야? 아트센터야?”
문래동의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413’은 젊은 아티스트 3인이 빈 공장에 모여 시작한 곳이다. 작가들의 자발적인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기획하기 위해서였다.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413’ 정동훈씨는 “예전부터 문래동에서 활동하신 분들이 있었지만 시작 당시만 해도 예술촌이라고 불릴만한 요소가 많지는 않았다”며 “최근엔 젊은 예술가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예술촌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2007년 문래동에 작업실을 연 김종우 조각가는 “8년전 대학졸업과 함께 일찌감치 온 덕분에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넓은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했다. 2010년 개관해 문래동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돕고 있는 ‘문래예술공장’에선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예술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문래예술공장 관계자는 “현재 문래예술촌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은 250명에 이른다”며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는 문래예술공장은 이곳 예술가들을 위해 전시공간, 공동작업실 등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래예술촌에선 2007년부터 매년 ‘문래아트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이곳에선 연극, 무용, 회화, 사진, 영상 등 다양한 영역의 예술가들이 모여 서로 다른 장르끼리 소통하는 한편 지역주민들도 참여하는 축제마당으로 정착하고 있다.

성수동 거리. ‘자그마치’ 갤러리카페와 정미소였던 대림창고 2층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 창고’가 있다.
성수동 거리. ‘자그마치’ 갤러리카페와 정미소였던 대림창고 2층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 창고’가 있다.

문래동이 서울의 대표격으로 자리매김한 예술단지라면, 성수동은 이제 갓 등장한 신인이다. 성수동은 아직 예술촌으로 자리잡지는 않았지만 근 1년 사이 다양한 예술공간이 생겨나고 있다. 본래 성수동은 수제화 공장지대로 유명했다. 성수역에 내려 수제화 거리에 들어서면 분주하게 돌아가는 공장과 그 안에서 젊음을 바치는 노동자들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공장들이 즐비한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예술가들의 작업실과 갤러리를 찾는 것은 성수동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다.

성수동은 정미소로 이용되던 대림창고에서 젊은 예술가들이 다양한 예술행사를 주도하면서 처음 알려지기 시작했다. ‘스튜디오 창고’의 안형준 실장은 8년 전 정미소였던 대림창고 2층을 직접 리모델링했다.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종종 영화촬영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안 실장은 “정미소였던 이곳을 직접 개조해 스튜디오 용도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성수동만의 분위기와 에너지가 너무 맘에 든다”고 했다.
성수동은 최근 들어 ‘예술촌’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지만 이미 예전부터 인터넷쇼핑 전용 스튜디오와 갤러리 카페가 이곳에 여럿 있었다. 소비성향이 높은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청담동과 거리가 가깝고 임대료가 싸기 때문이다. 1년 전 성수동에 정착한 황병준 보부상회 디자인협동조합 이사장은 “성수동 토박이를 꼽으라면 인쇄소를 개조해 만든 ‘자그마치카페’를 들 수 있다”며 “최근 1년 사이 성수동에 갤러리 카페, 스튜디오 등이 많이 생겼다”고 말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의 혼이 담기다
어두웠던 성수동 공장지대에 예술가들이 들어오면서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살던 주민들이 ‘젊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보부상회는 갤러리 앞마당에서 공연을 열고 있다. 황 이사장은 “사실 처음엔 이곳 주민들이 싫어할까봐 걱정했는데 정말 좋아하신다”면서 “성수동이 공장지대라 해가 지면 어두워서 사람도 다니지 않던 동네인데 우리가 공연을 열면서 도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고 했다. 추운 날씨로 공연을 잠시 중단했던 보부상회는 봄이 되면서 다시 기지개를 펴고 있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공장지대를 선호할까. 첫째, 저렴한 임대료 둘째, 작업하기 좋은 환경 셋째, 공장지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삶의 에너지와 도전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황 이사장은 홍대에서 임대료가 싼 성수동으로 이사왔다. 그는 “사무실 규모를 늘려야 되는데 홍대 부근 임대료가 계속 올라 성수동을 택했다”며 “이곳은 면적에 비해 임대료가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대림창고 2층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 창고’.
대림창고 2층을 리모델링한 ‘스튜디오 창고’.

공장의 기계 및 공간 등을 빌려 작업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철공소 밀집지역인 문래동의 경우, 용접작업이 필요한 조각가, 설치예술가 등이 활동하고 있다. 문래예술촌의 철공소를 들여다보면 예술가들의 다양한 미완성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낮에는 철공소로, 저녁에는 예술가들의 작업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김종우 조각가는 “문래동은 임대료가 싸다는 장점도 있지만 조각가들이 재료를 구하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수제화공장이 밀집한 성수동의 경우, 가방, 벨트, 구두 등 가죽을 다루는 디자니어들이 많이 찾는다. 황병준 보부상회 이사장은 “성수동에 원단집, 가죽 가공공장들이 많다 보니 가죽 디자니어들이 작업하기 좋다”며 “금속용접하는 예술가들은 철공소가 많은 문래동으로 간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공장지대만의 분위기도 예술가들이 공장에 오는 이유 중 하나다. 성수동의 안형준 스튜디오창고 실장은 “강남에 스튜디오가 너무 많아 재미없다고 생각했다. 성수동 공장지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에너지와 원초적 느낌이 좋다”고 말했다.

‘아시아엔’과 인터뷰중인 황병준 디자인협동조합 보부상회 이사장.
‘아시아엔’과 인터뷰중인 황병준 디자인협동조합 보부상회 이사장.

“명동 안 부럽다”…관광객 쇄도
문래동, 성수동엔 카메라를 들고 예술촌을 방문하는 관광객이 많다. 이에 따라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관광사업을 진행하는 등 예술촌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지방정부의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문래예술촌은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됐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성수동의 경우, 제2의 문래예술촌을 만들기 위해 관할 성동구청이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황병준 이사장은 “예술가들이 성수동에 이사오면서 성동구청의 관심도 큰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방문객이 늘면서 예술촌 고유의 분위기를 해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성수동의 스튜디오창고 안형준 실장은 “성수동이 예술촌으로 뜨면서 이곳만의 색깔이 없어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문래예술촌 골목엔 ‘사진금지’라는 푯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래동의 김종우 조각가는 “문래동이 유명해지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데 무례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작업실에 무작정 들어오거나 사진을 찍는 사람들 때문에 작업에 방해가 되기도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예술촌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임대료가 비싸지고 있는 것이 이곳 예술가들의 걱정거리다. 황병준 보부상회 이사장은 “사실 이곳에 예술가들이 몰려온 데는 값싼 임대료가 중요한 계기가 됐는데, 공급이 달릴 경우 임대료 인상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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