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특별기획] 상하이 M50·베이징 798거리 개방 이후 예술단지로 재탄생

모간산루50호 곳곳에선 예술가들이 그려넣은 그래피티를 쉽게 볼 수 있다.
모간산루50호 곳곳에선 예술가들이 그려넣은 그래피티를 쉽게 볼 수 있다.

‘잿빛 공장지대, 찬란한 예술로 승화’

[아시아엔=글·사진 최정아 기자] 상하이의 ‘모간산루50호’(M50)와 베이징의 ‘다산즈798’(798거리)은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단지다. 1979년 개혁개방 이전, 이 두 지역은 쇠락한 공장지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흉물스러운 공장지대를 리모델링하여 예술촌으로 재탄생시켰다. 그곳에서 상하이의 젊은 예술가들은 정치·사회·예술에 대해 토론했고, 베이징의 일류 예술대학 교수들은 현대중국예술을 일구기 위해 노력했다. 개혁개방 이후에야 꽃을 피울 수 있었던 M50과 798거리가 이른 시간 내에 아시아 대표 예술단지로 거듭난 것이다.

상하이 도심관광지역을 지나 모간산루50호(M50)로 가는 길은 꽤 낯설다. 상하이 기차역에 내리면 화려한 빌딩숲이 사라지고 오래된 건물들과 택시, 오토바이가 무질서하게 주차된 풍경이 보인다. 도심 속 화려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예술단지 타이캉루 티엔즈팡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다. 복잡한 거리를 빠져나와 M50 입구에 들어서면 아티스트들이 꾸며놓은 화려한 그래피티가 눈을 사로잡는다. 1930년대 제분·방직공장지대였던 M50만의 빈티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회사원 김원미씨는 “모간산루50호에 가자마자 공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며 “타이캉루 티엔즈팡은 관광지라면, 모간산루50호는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공간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2009년 상하이 시는 모간산루50호를 ‘M50예술품창의기지(Shanghai Culture Industry Park)’로 지정했다.
2009년 상하이 시는 모간산루50호를 ‘M50예술품창의기지(Shanghai Culture Industry Park)’로 지정했다.

개혁개방 ‘현대미술’ 꽃피우다
개혁개방 이후 제분·방직업계가 쇠퇴하면서 모간산루 내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공장지대에 푸이에후이, 공지엔칭, 후웨이롱, 리산 등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아방가르드 예술을 다루는 전시회를 열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에선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예술촌을 형성하는 일은 드물었다. 이곳 예술가들을 위한 후원이나 지원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96년 스위스의 상아트갤러리(ShangART gallery)가 모간산루에 자리잡은 뒤 가난한 예술가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상아트갤러리 ‘Open Space’라는 주제로 상하이비엔날레를 개최하면서 M50는 본격적으로 예술단지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1998년엔 대만 유명건축가 덩쿤옌이 폐공장을 자신의 스튜디오로 개조하며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다. 이후 세계 다양한 예술가들이 모간산루에 모이기 시작했고, 신인들을 지원하는 비즈아트갤러리(BizArt gallery), 엠투(m2) 등 다양한 갤러리들이 생겼다. 2009년 상하이시는 모간산루를 ‘예술품창의기지’로 지정했다.

한편 베이징의 다산즈798거리(798거리)는 마오쩌둥 시대에 운영됐던 거대공장단지였다. ‘다산즈798’이란 이름은 본래 지명이었던 ‘다산즈’라는 이름과 다산즈의 한 공장번호였던 ‘798’이 합쳐서 생긴 명칭이다. 구소련과 동독의 원조를 받아 지어진 798거리는 3만여평에 달하는 거대규모로 군수무기 및 중공업 공장들이 밀집해 있었다. 당시 중국정부는 군수무기를 생산하는 공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도록 각 공장건물에 798, 797 등과 같은 번호를 부여했다. 하지만 1979년 개혁개방 이후 무기산업이 활기를 잃으면서 다산즈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2만명이 넘던 노동자들도 대량 실직했다. 모간산루의 공장들과 같은 수순을 밟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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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95년 폐공장지대였던 798거리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북경중앙미술학원(CAFA) 조소과 교수가 임대료 싸고 공간이 넓은 706호 공장을 임대하여 작업장으로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북경중국미술학원 쑤이지엔궈 교수, 디자이너 린칭, 출판업자 홍황, 음악가 리우쑤어라 등이 798거리에 자리잡았다. 이후 2001년 미국 텍사스 출신의 로버트 버넬이 서점과 출판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 현지 직원이 들어오면서 예술가들에게 작업장을 제공하고, 예술가들을 보호하며 예술촌으로서 면모를 갖추게 됐다.

이처럼 798거리는 M50보다 빠른 시간 내에 세계적인 예술단지로 도약했다. 프랑스 사르코지 전 대통령, 국제올림픽위원회 자크 로게 위원장, 독일 슈뢰더 전 총리 등 베이징을 방문한 각국 원수들도 798거리를 다녀갔다. 현재 798거리에 있는 갤러리만도 300여개에 이른다. 이곳은 현재 스튜디오, 작업실, 갤러리, 카페, 서점 등 다양한 예술문화거리로 진화했다. 2006년 1월 북경시는 예산 5억 위안(약 600억원)을 투자해 798거리를 ‘문화창의산업특구’로 공식 지정했다. 상하이의 M50과 베이징798거리를 모두 방문했다는 중문학 전공자 서수민씨는 “798거리는 모간산루50호보다 훨씬 방대하다”며 “개인적으로 798거리보다 모간산루50호가 상하이 도심 분위기와 많이 달라 공장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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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거리엔 도자기, 악세서리 등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판매하는 곳이 많다. 과거 공산당원복장을 한 여성캐릭터가 인상깊다.

M50과 798거리는 갤러리와 예술가들은 서로 협업하며 상하이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세계에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세계인들이 M50와 798거리의 갤러리들을 통해 중국현대예술 작품들을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젊은 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예술구의 갤러리들은 정치적 색깔이 있는 작품들은 기피했으며 사회문제와 관련된 작품은 다루지 않았다. 초창기 젊은 예술가들이 정치와 사회에 대해 토론했던 M50의 모습도 사라졌다. 이에 따라 상업화된 예술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2000년 상하이비엔날레에선 세계적인 예술가 아오웨이웨이와 펑보이가 ‘퍽오프전’(Fuck off Exhibition)을 열어 M50 및 이곳의 예술이 상업화되고 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중국에선 매우 이례적으로 예술계 비판 전시회가 열린 것이다. ‘퍽오프전’은 세계인들의 관심을 받으며 최고의 현대예술전시회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상하이시에서 전시금지명령을 내리면서, 전시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798거리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작품. 마치 살아있는 늑대같이 생동감 넘친다.
798거리에 전시되어 있는 조각작품. 마치 살아있는 늑대같이 생동감 넘친다.

상상력·실험정신·실용주의…
현재 M50과 798거리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가난한 예술가 대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랑과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원래 M50과 798거리에서 활동했던 가난한 예술가들은 임대료가 싼 지역을 찾아 떠났다. 제2의 M50, 798거리가 탄생된 것이다. 상하이의 경우, M50의 일부 예술가들이 제철공장지대였던 ‘홍팡’(레드타운)을 리모델링하여 새로운 예술단지로 재탄생시켰으며 도축장을 개조해 ‘1933노장방’이란 예술구를 창조해냈다. 베이징에선 술공장을 개조해 예술지대로 변모시킨 ‘지우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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