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시대, ‘고령영화’ 뜬다?(하)] ‘국제시장’ ‘님아 그 강을’···노인 삶 조명에 20·30대도 ‘공감 만점’

[아시아엔=이재광 을지대 산학협력단 시니어사회ㆍ경제연구센터 소장]?2014년 한국영화계는 고령자를 주인공으로 한 ‘고령영화’가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외 다양한 고령영화들이 개봉돼 좋은 성적을 거뒀고, ‘서울노인영화제’는 국제영화제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아시아엔은 고령화시대를 맞아 2014년 고령영화의 흐름과 의미를 두 차례에 걸쳐 정리한다. – 편집자

2014년 한국 고령영화는 하반기, 그것도 마지막 4/4분기에 집중적으로 폭발을 시작했다. 그 첫 포문을 연 것이 바로 <나의 독재자>(감독 이해준)다. 10월에 개봉된 이 영화는 설경구, 박해일 등 두 연기파 배우의 열연으로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나의 독재자>의 개봉과 함께 2014년 고령영화는 그 정점을 향해 치달았다.

<사진=반짝반짝영화사>

‘나의 독재자’는 비록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배우 설경구가 최고의 연기력을 발휘한 영화로 평가받았다.

<나의 독재자>는 한 무명배우의 이야기다. 연극배우 성근(설경구 분)은 단역만 전전하는 무명 중 무명. 홀어머니와 아들을 모시고 사는 그는 당연히 빈한하다. 주연 배우를 꿰찰 수 있는 기회가 왔지만 긴장한 나머지 이마저 놓치고 시름에 빠진다. 이때 새로운 배역 제안이 오고 오디션에 참석해 이 배역을 따낸다.
그런데 그 ‘배역’이 문제였다. 영화나 연극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배역이었던 것이다. 남북공동성명 발표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던 정부는 회담의 리허설을 위한 배역이 필요했고, 영화 속 주인공은 바로 이 정상회담을 위한 김일성의 대역을 맡게 됐던 것이다.

주인공으로서는 생애 첫 번째 주연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는다. 정상회담이 무산되고 만 것이다. 정산회담 계획이 사라지자 김일성 배역도 사라지고 이와 함께 영화 속 주인공의 꿈도 사라지고 만다.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그는 결국 평생을 ‘김일성 주석’으로 살아가고 성장한 아들 태식(박해일 분)은 어쩔 수 없이 이런 아버지와 살아가야 한다.

산업이 돼 버린 영화는 ‘흥행’이라는 수치로 모든 것이 재단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나의 독재자>는 분명 ‘실패’일 것이다. 동원 관객은 40만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설경구, 박해일 등 당대 최고의 배우가 출현한 영화임에도 개봉 20일이 안 돼 간판을 내리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출연 배우들의 연기만큼은 높이 사야 한다는 평가가 대세였다. 특히 김일성 역을 맡아 평생을 김일성으로 살아 온 설경구의 연기는 어떤 출연작보다 훌륭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2014년 영화계를 꿰뚫은 고령영화는 그해 마지막 두 달 동안 최고조에 달했다. 두 달 사이 두 편의 시니어 영화가 꼬리를 물 듯 개봉됐고 이들은 2014년 최고의 흥행작이라 불릴 만 했다. 11월 개봉된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감독 진모영)그리고 12월 한 해 마지막을 장식하며 흥행대작의 반열에 오른 <국제시장>이 그들이다. 고령영화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이 두 편의 영화는 고령영화의 가능성을 한껏 치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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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감성으로 사랑을 나누던 89세, 98세의 노부부 이야기, 큰 감동과 함께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워낭소리’의 기록을 깼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76년을 함께 한 노부부의 사랑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89세의 소녀 감성을 지닌 강계열 할머니, 그리고 98세의 로맨티스트 조병만 할아버지가 주인공이다. 100세 가까운 나이에 10대의 감성으로 커플룩을 입고 서로를 사랑하는 두 주인공의 일상과 헤어짐은 관객의 영혼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영화의 감동은 입소문을 타고 흥행 돌풍을 일으켰다. 153곳에 불과했던 상영관이 개봉 한 달 만에 800곳 가까이로 늘었다. 다큐 영화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연히 흥행 면에서도 대성공. 2015년 2월15일 현재 총 관객 수는 479만 명으로, 독립영화로는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2009년 개봉해 온갖 화제를 몰고 오며 관객 293만 명을 동원한 ‘워낭소리’의 기록도 이로써 깨졌다. 무명이었던 비정규직 PD 출신의 진모영 감독도 이 영화 하나로 단번에 스타가 됐다.

당연히 성공 요인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이 이뤄졌다. 흥행 요인은 다양하다. 진정한 사랑에 목마른 현대인의 감수성을 파고들었다거나 복고 붐을 탔다는 등의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에서, 배급사의 공격적 마케팅이나 마땅한 경쟁작이 없었다는 등의 영화 외적 요인도 거론됐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가 갖는 의미는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성공이 갖는 ‘사회적 의미’다. 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고령화 사회를 살아가야 하는 현대 한국인들의 세대 간 공감대를 구축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고령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어느 사회나 있다. 하지만 세대 간 갈등은 젊은층이나 고령층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동안 국내 고령영화는 노인의 성적인 문제를 다룸으로써 관객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거나, 손자 또는 동물 등 타자와의 사랑을 다룬 것들이 주류였다. <죽어도 좋아>(2002)에서 시작된 ‘성’ 관련 영화는 <은교>(2012)와 <야관문>(2013) <죽지 않아>(2013)로까지 이어졌다. 손자나 동물과의 사랑 얘기는 <집으로>(2002) <워낭소리>(2008) 등이 대표적일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봤을 때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주제는 새롭다. 70년 넘게 이어져 온 사랑과 헤어짐이 주는 아픔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이로써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 대신 우리의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과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이 심각한 2014년, 이 영화는 이런 점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주)JK필름>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우리 사회 1세대들의 애환을 그린 ‘국제시장’, 2014년을 사는 한국 젊은층의 공감을 사기 충분했다.

그리고 2014년 12월 마지막 달, 이 같은 고령영화의 흐름은 그야말로 ‘대미’를 장식한다. 바로 <국제시장>(감독 윤제균)이다. 한국전쟁 말미에 북한을 탈출해 남쪽으로 이주한 한 가족의 이야기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우리 사회 1세대 고령층의 삶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지금의 한국경제, 풍요로운 국가 건설은 바로 그들의 희생 덕이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이다.

스토리는 눈물겹다. 흥남부두에서 아버지와 생이별한 주인공 덕수의 삶은 처절하다. 아버지 대신 가장의 역할을 떠맡은 그는 가족을 위해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과 ‘희망’을 챙긴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삶이 평생 동안 이어진다.

영화는 한국경제를 견인한 두 개 사건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광부, 간호사 독일 파견과 월남 참전이다. 이 두 사건 모두에 참여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 광부나 간호사가 독일로 갔다가 월남전까지 참전한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는 그렇다. 목숨을 걸고 가족을 지킨 것이다.

이 영화는 뜻하지 않게 우리나라 진보 세력의 정치 논쟁으로 비화됐다.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과 영화 전반이 갖는 국가관의 해석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의 정치적 성향을 따지기 전에 영화의 사회적 성격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고령화는 피할 수 없는 대세다. 세대 간 화합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 시대에 고령 1세대의 삶을 공유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로서는 필수다. 이념보다는 그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2014년은 이렇게 고령영화로 시작해 고령영화로 끝난 한 해였다. 2015년에는 이 같은 판도가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시니어 영화 붐이 이 정도 선에서 끝날지 아니면 영화뿐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까지 시니어 붐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고령화 사회에 적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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