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은 대기업 뭉칫돈이 싫다
대기업이 넘치는 자금을 은행에 맡기려 하지만 은행들은 활용할 곳이 없어 받지 않겠다고 마다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업예금은 지난달 말 53조2천억원과 38조3천억원으로 2년전보다 5조3천억원(11.1%)과 4조3천억원(12.6%) 늘었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은 7조2천억원(9.0%)이 증가해 86조8천억원, 신한은행은 6조4천억원(8.8%)이 늘어나 79조3천억원의 기업예금을 보유하게 됐다.
국민은행(73조원)과 기업은행(45조1천억원)을 합친 6개 주요 은행의 기업예금 잔액은 375조7천억원에 이른다.
은행들이 받는 기업예금은 기업 입장에선 여유자금이다. 대규모 결제나 투자를 앞두고 짧은 기간 돈을 맡겨두는 일도 있지만, 대부분 잉여 현금흐름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국내 100대 대기업의 잉여현금흐름이 120조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최근 한 지방은행의 기업예금 유치 요청을 거절했다. 수백억원에 달하는 예금을 연 2.5%의 우대금리로 받아달라는 내용이었다.
다른 은행도 상황이 비슷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로 자금이 넘치다 보니 예금을 경쟁 은행에 넘기려 하고, 이를 거절하는 것이다.
기업예금 유치를 놓고 은행 내부에서 영업 부서와 자금 부서가 충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업을 ‘고객’으로 모셔야 하는 영업 부서가 기업예금을 유치하면, 이 돈을 굴려야 하는 자금 부서가 퇴짜를 놓는 식이다.
규모가 큰 기업예금은 금리 0.1%포인트에 오가는 돈이 수억원이다. 대기업은 여유자금을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에 분산 예치하면서 금리를 협상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한꺼번에 수천억원의 자금을 굴리는 대기업의 자금 담당 부서장은 은행들에 ‘슈퍼 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