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일본군, 인천상륙작전 계획 참여

이종판 박사(왼쪽)와 미키 히데오 교수 <사진=이종판>

日 중장 출신 미키 히데오 방위대 교수 증언 ‘최초 공개’

故 미키 히데오 일본 방위대 교수는 일본을 사랑하는 만큼 한국도 너무 좋아했던 분이다. 그는 유언으로 한국의 필자에게 자신의 ‘비밀’을 알렸다. 일본 연구자들은 오히려 필자를 통해서 한국전의 일본군 참전을 알게 되었다. 그는 2013년 숨을 거두면서 장례식 없이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했다.

미키 히데오 교수는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일본 자위대 지휘참모대학 출신으로 군 고위직을 지냈다. 자위대에서 30년간 근무한 뒤 1982년 중장으로 퇴역했다. 그는 1985년부터 일본 국방대학에서 중국땅에서 벌어진 일본의 전투와 대소 전쟁 및 한국전사, 태평양전쟁사를 가르쳤다. 미키 교수는 일본의 전통 검술인 검도(劍道)의 달인이다. 필자의 오랜 일본 현대군 연구를 도와준 그는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결심은 풍부한 상륙작전 경험과 옛 일본군의 조언이 통합된 영감이 큰 힘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륙때 일본 수송선 가이드 역할

미키 교수는 작년 88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그 1년 전까지 일본 방위대학교에서 강의하였다. 그의 6·25 연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필자는 2003년 1월29일 연구실에서 그를 만나 다음과 같은 사실을 청취했다.

“미 제8군사령부와 도쿄의 GHQ사령부는 구일본군 장교를 불러 조언을 받았다. 인천상륙작전 때 수송선에 일본이 편성되었다. 그들은 가이드 역할과 통역을 했다. 동경의 GHQ사령부에서는 구일본군 참모들이 고문 형식으로 수시로 출입했고, 일본군 마지막 대본영 정보부장이던 아리수 세이죠(有末精三) 중장은 인천원산상륙작전 구상 때 GHQ 작전과장에게 ‘청일전쟁 시 인천과 원산에 상륙하여 평양을 협공하였던’ 과거 전쟁 경험을 조언했다. 6·25 발발 직후 구일본군 해군대장 노무라 키치사부로(野村吉三郞)를비롯한 구해군 장교들은 미 해군작전부장 버크 제독에게 중공군이 참전할 것이라고 일찍부터 조언했다.”

미키 교수는 증언을 통해 “청일전쟁 요도와 6·25전쟁에서 평양과 원산을 연결하는 작전은 거의 비슷하다”며 “우연의 일치라기보다 구일본군이 상륙계획부터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증언을 보거나 최근 새롭게 밝혀지는 사실들에 따르면 청일 전쟁과 6·25 사이에 6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음을 고려하더라도 현대식 무기로 중무장한 미군이 이같은 작전을 못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한지 5년 만에 발생한 한국전에서 일본인을 최대한 활용하였다는 사실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미키 교수가 생전 필자에게 밝힌 증언들은 곳곳에서 사실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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