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
  • 문화

    [오늘의 시] ‘고난’ 박노해 “장하다 하지만 잊지 마라”

    폭설이 내린 산을 오른다 척박한 비탈에서 온몸을 뒤틀어가며 치열한 균형으로 뿌리 박은 나무들이 저마다 한두 가지씩은 부러져 있는데 귀격으로 곧게 뻗어 오른 소나무 한 그루 상처 난 가지 하나 없는 명문가 출신에 훤칠한 엘리트를 닮은 듯한 나무 한 그루 하지만 나는 금세 싫증이 났다 너는 어찌 된 행운인가 너에겐 폭풍과…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손을 펴라’ 박노해 “한 번 크게 놓아버려라”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토착민들은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 놓습니다 가죽 자루의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쥐고는 흐뭇해 합니다…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나 하나의 혁명이’ 박노해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천지간에 나 하나 바로 사는 것 이 지구 위 인류 모두가 나처럼 먹고 쓰고 생활한다면 이 세상이 당장 좋아질 거라고 떳떳이 말하며 살아가는 사람 내가 먼저 적게 벌고 나눠 쓰면서 덜 해치고 덜 죄짓는 맑아진 얼굴로 모두 나처럼만 살면 좋은 세상이 되고 푸른 지구 푸른 미래가 살아난다고 내가 먼저 변화된…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어머니의 새해 강령’ 박노해 “옆도 보고 뒤도 보며 화목하거라”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를 장작불에 데운 물로 목욕을 시킨 후 문기둥에 세워놓고 키 금을 새기면서 작년보다 한 뼘이나 더 커진 키를 보며 봐라, 많이도 자랐구나 어서어서 자라나거라 함박꽃처럼 웃으며 기뻐하셨다 설날이 오면 어머니는 어린 우리 형제자매를 깨끗이 빨아 다린 설빔으로 갈아 입힌 후 둥근 상에 앉혀놓고 떡국을 먹이며…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가면 갈수록’ 박노해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뒤를 돌아보면서 앞을 향해 걸었다 너를 향해 걸었다 내 희망은 단순한 것 내 믿음은 단단한 것 내 사랑은 단아한 것 돌아보면 그랬다 가난이 나를 단순하게 만들었다 고난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독이 나를 단아하게 만들었다 그것들은 나를 죽이지 못했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들은 나를 더 푸르게 하였다 가면 갈수록 나 살아있다…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기침 소리’ 박노해

    찬 겨울 아침   어흠, 어른의 기침 소리 마당 위 얇은 싸락눈이 한번 날리고 갓 깨어난 참새들 대숲으로 난다 물동이를 머리에 인 누나가 발자국 소리 죽이고 숙취 어린 눈동자들 흠칫 옷깃을 매만진다 어흠, 이른 아침 어른의 기침 소리 정신 차려 자세를 가다듬는 맑고 차운 시대정신의 기침 소리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序 그 여자 앞에 무너져내리다’ 박노해

    그 해 첫눈이 펑펑 내리던 밤 엉금엉금 기어가는 마지막 호송차는 만원이었지요 그 바람에 규정을 어기고 나는 그 여자 옆에 앉혀지게 되었습니다 눈송이 날리는 창 밖만을 하염없이 내다보던 그 여자는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검은 눈이 어느덧 젖어 있었습니다 자기는 아이 둘 가진 노동자인데…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가득한 한심’ 박노해 “양지바른 무덤가에 누워”

    오늘은 한심하게 지냈다 일도 하지 않고 책도 읽지 않고 마루에 걸터앉아 우두커니 솔개가 나는 먼 산을 바라보고 봉숭아 곁에 쪼그려 앉아 토옥토옥 꽃씨가 터져 굴러가는 걸 지켜보고 가을 하늘에 흰 구름이 지나가는 걸 바라보고 가늘어지는 풀벌레 소리에 귀 기울이고 소꿉장난하는 아이들과 남편 배역을 맡아 하다가 목이 말라 우물가에서 심심한 물…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살아서 돌아온 자’ 박노해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진실은 사과나무와 같아 진실이 무르익는 시간이 있다 눈보라와 불볕과 폭풍우를 다 뚫고 나온 강인한 진실만이 향기로운 사과알로 붉게 빛나니 그러니 다 맞아라 눈을 뜨고 견뎌내라 고독하게 강인해라 거짓은 유통기한이 있다 음해와 비난은 한 철이다 절정에 달한 악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대 아는가 세상의 모든 거짓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끝까지 죽지 않고 살아…

    더 읽기 »
  • [오늘의 시] ‘우주의 가을 시대’ 박노해 “첫 서리가 내렸다”

    첫 서리가 내렸다 온 대지에 숙살肅殺의 기운 가득하다 하루아침에 찬란한 잎새를 떨구고 흰 서릿발 쓴 앙상한 초목들 나는 텅 빈 아침 숲에 서서 하얀 칼날을 몸을 떨며 바라본다   싸늘한 안개 속으로 태양이 떠오를 때   사과 밭으로 올라가는 나는 지금 두 다리 밑에 지구를 깔고 우주를 산책하고 있다  …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하루’ 박노해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여명은 생의 신비다 밤이 걸어오고 다시 태양이 밝아오면 오늘 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짐을 진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이 삶의 무게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면 기꺼이 그것을 감내할 힘이 생겨나느니   나는 하루 하루 살아왔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가을 열매 소리’ 박노해 “도토리 산밤 잣 다래 개암”

    가을 산은 숙연해라   태풍이 지나간 정적 속으로 도토리 산밤 잣 다래 개암 가을 열매들이 투신하는 소리   나 이 한 생에 그토록 성장하며 폭풍 속을 걸어온 까닭은 이 성숙 하나를 위해서였다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아도 가을 속에 물들며 서 있는 것은 이 결실을 남겨주기 위함이라고   가을 산에 서서…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박노해 ‘오늘처럼만 사랑하자’···”작은 꽃씨처럼 가난할지라도”

    오늘은 사랑 하나로 눈부신 날 오늘처럼만 사랑하자 검푸른 우주 어느 먼 곳에서 그대와 내 별의 입맞춤이 있어 떨리는 그 별빛 이제 여기 도착해 사랑의 입맞춤으로 환히 빛나니 우리 오늘처럼만 사랑하자 오늘은 사랑 하나로 충분한 날 오늘처럼만 걸어가자 바람 부는 길 위에서 그대와 나 작은 꽃씨처럼 가난할지라도 가슴에 새긴 입맞춤 하나로…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우울’ 박노해 “우울한 거리에서 우울한 마음으로”

    우울한 거리에서 우울한 마음으로 유리창의 자화상을 본다   세상의 모든 우울이란 찬란한 비상의 기억을 품은 중력의 무거움   날자 우울이여 찬란한 추락의 날개로 우울을 뚫고 시대의 우울로

    더 읽기 »
  • 문화

    [오늘의 시] ‘은빛 숭어의 길’ 박노해

    그 가을 고향 갯가에 노을이 질 때 나는 마른 방죽에 홀로 앉아서 바다로 떨어지는 강물을 바라보았지 숭어들이 눈부신 은빛 몸을 틀며 바다에서 강물 위로 뛰어오르는 걸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지 그렇게 거센 물살을 거슬러 숭어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나는 몸을 떨며 지켜보고 있었지 가도 가도 어둠 깊은 시대를 달리며 절망이…

    더 읽기 »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