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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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 시인의 ‘아버지 회억’···”아련한 당신의 축귀문 독송 들리는듯”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어린 날 새벽이면 아버지가 외시는 ‘축귀문(逐鬼文)’ 독경이 들렸다. 잠결에 듣는 아버지 음성은 파도소리처럼 가깝게 다가왔다가 아스라히 멀어지기도 했다. 어떤 날은 아버지께 늘 읽으시는 글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집안을 침노하려는 나쁜 기운이 공중에는 가득하기 때문에 그것들이 절대 범접하지 못하도록 호되게 꾸중하는 내용, 결코 다가와서는 안되는 논리 따위를 조목조목 적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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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석 형, 내년 한국현대대표시선Ⅲ 30돌 기념해 만납시다, 민영·최원식 시인도 함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1992년 11월, 창비 회의실에서는 <한국현대대표시선 시리즈 3>을 발간하는 편집자 모임이 있었다. 민영, 최원식, 이동순, 최두석 등 4인이 편자로 모인 그날의 회동 인물들이다. 1970년대 이후 대표시작품을 엄격한 기준 속에서 추천하고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선정하는 모꼬지였다. 그 편집자 중 가장 후배였던 최두석 시인은 1956년 전남 담양 출생이다. 1980년 <심상>지를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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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고 애잔한, 먼저 간 제자 김상인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평생을 강단에 머물다보니 별별 학생들을 많이 겪는 경우가 있다. 이 편지의 주인공도 나에게 작은 인연으로 다가와 자기존재를 강렬하게 드러내며 지내다가 눈앞을 스쳐간 한 줄기 연기처럼 홀연히 떠나가버린 그런 기억으로 남은 제자다. 나는 영남대 국문과에서 강의를 했지만 1994년 한해동안 계명대로 출강한 적이 있다. 과목은 문예창작론, 담당 교수가 퇴임한 직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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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 시형께···1980년 5월 16일 한광구 드림”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공적인 회합이나 만남에서 활짝 웃으며 먼저 다가와 호감을 보이는 그런 분이 꼭 있다. 어떤 계기가 있는 건 결코 아니고 본인 자신의 싹싹한 성품에다 늘 사교적 친근감으로 남을 대하는 밝고 환한 그의 기질 때문이리라 여긴다. 한광구(1944~ ) 시인이 바로 그런 분이다. 잘 웃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언제나 자신을 낮추는 매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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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하’는 죽었다. 이제부터 나를 ‘김영일’이라 불러다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김지하 시인의 친필편지는 드물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한통 갖고 있다. 1986년 여름날 새벽, 정신과 병동에서 써 보냈다. 그가 정신적으로 매우 허약하던 시절의 글이라 이걸 공개하는 일에 많이 주저했다.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공개해도 된다는 판단에서 오늘 이 글을 올린다. 김지하 시인은 한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민주화시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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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밑 스산한 거리에서 김규동의 ‘송년’을 읽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김규동(1925~2011) 시인께서는 1991년, 시선집 <길은 멀어도>(미래사)를 발간하셨는데, 그간 시집들에서 가려뽑은 것이었다. 그때도 해설을 나에게 요청하셨다. 모더니즘 방법으로 시창작의 길을 열어나갔지만 단조로운 기교, 기하학적 구도를 극복하고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결합한 새로운 방식으로 시를 써서 놀라운 감동과 신선함을 성취하신 경로를 두루 탐색하고 정리하였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해설의 관점이 몹시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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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년전 베를린 파독간호사로부터 온 편지엔…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이런저런 편지를 많이 받았지만 오늘은 특별한 편지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멀리 독일 베를린에서 보내온 편지다. 이 편지의 곡절 많은 주인공은 경북 성주 출생의 파독간호사 이민자 여사. 1968년 무렵 독일로 떠나 여러 병원에서 일했다. 그녀는 간호사 계약기간을 마치고 베를린의과대학에 진학해서 모든 과정을 거친 뒤 내과의사가 되어 병원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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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양희 시인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혼자 산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 잠자리에서 눈을 뜨고 혼자 살아있음을 발가락 꼼지락거려 확인하고 혼자 헛기침을 해서 주변의 고독을 밀어내고 혼자 주방에서 뭔가를 끓여 끼니를 잇고 혼자 누워서 읽던 책을 마저 읽고 혼자 작은 방에 서성이며 긴 하루해를 보내고 혼자 컴컴한 방에 불을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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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단 동기 벗 최학, 배갈 들며 밀린 얘기 나누세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최학(1950~ )이란 소설가가 있다. 1973년 같은 해 <경향신문> 신춘문예 출신인데 ’73그룹’ 모임에는 나오지 않았다. 그가 유난히 궁금하고 또 동갑나기였으므로 마음 속으로 늘 그리움을 갖고 있었다. 80년대 내가 청주 충북대에서 지내던 시절, 최학은 대전의 중경공전 교수로 있었는데 청주와 대전은 지척이라 한번 불쑥 방문하고 싶은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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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나라 제자에게 보내는 스승의 30년 지각답장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이제는 가고 못 오는 제자 창일에게 그간 잘 계셨는가? 나의 이 답신이 30년만일세. 간간이 자네 생각을 했었지만 절실함은 아니었다네. 이승 사람 생각도 소홀한 터에 아주 멀리 떠나간 옛 제자 생각을 그리 자주 할 수야 있겠는가? 자네가 양해하실 줄 믿네. 그래 거기 저승의 삶과 시간은 어떠한가? 삶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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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니 사촌의 처남, 이동순 시인을 놀라게 한 엽서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정재호(1929~?)라는 시인이 있었다. 상주 출신으로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으로 등단을 거쳤다. <모과>, <마당>, <천치가 부르는 노래> 등의 시집, <생각의 모래알> 등의 수필집도 발간한 바 있다. 청구대학 국문과를 졸업하고 평생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일했다. 공식적 문학행사가 있을 때면 으레 만나게 되던 분, 문단에서 그리 많이 알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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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세암’ ‘바보 별님’ 남기고 떠난 정채봉 ‘첫 마음’ 그립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아동문학가 정채봉(丁埰琫)은 1946년 전남 순천 승주 출생으로 2001년 54세를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나와 같은 1973 동아일보신춘문예 동기로 동화 ‘꽃다발’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느껴지는 동화로 많은 독자의 심금을 울렸다. 대표작으로는 ‘오세암’, ‘물에서 나온 새’, ‘바보 별님’, ‘가시넝쿨에 돋은 별’, ‘첫 마음’, ‘꽃그늘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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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마다 이육사 동상 닦는 팔순 딸 “아버님 그리워 목이 멥니더”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육사 시인의 따님 옥비 여사께서는 보 면 볼수록 아버지 육사시인을 그대로 닮았다. 이목구비가 완연하다. 특히 서대문형무소 죄수사진의 표정과 판박이로 닮았다. 올해 여든이신데도 곱고 엄정하고 결연하신 데가 있다. 네 살 때 아버님 옥사 소식을 듣고 어머님은 그 슬픔에 두 번이나 목을 매었다는데 한 번은 시어머니가 살렸고 또 한 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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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 시인과 뜨거웠던 사랑 털어놓은 ‘자야’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87년 늦가을, 필자의 <백석시전집>(창비)이 발간된 직후 책을 보고 감격해서 나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온 자야(子夜) 여사의 용기는 대단했다.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이후 10여년 가량 서로 왕래하는 정분이 생겼다. 자야 여사는 나를 마치 백석 시인 대하듯 밥 숟가락 위에 반찬도 올려주고, 자는 방바닥이 차갑지는 않은지 하며 이부자리 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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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년전이나 지금이나···”함께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될 터인데”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내 스크랩엔 작가 김성동과 시인 이시영의 마음을 담은 정겨운 친필 편지가 가장 많다. 이시영은 예전 창비 주간으로 바쁠 때 주로 시집 발간이나 원고청탁 관련 편지가 많았다. 김성동은 시국에 대한 심정의 개탄, 혹은 나의 안부를 묻는 우정 어린 편지였다. 80년대는 내 몸의 건강이 몹시 나빠 병원에 오래 입원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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