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 사회

    ‘만다라’ 작가 김성동 “연인처럼 동순兄의 단아한 얼굴이 보고싶구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읽으면 그걸 쓴 사람의 당시 마음가짐이나 필체, 영혼의 상태, 감정의 기복까지를 모두 소상히 알게 된다. 그냥 아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전해져 온다. 오늘 올리는 작가 김성동의 편지는 그런 점에서 단연 압권이다. 끓어오르는 정을 억제하거나 조절하지 않고 마구 솟구쳐 철철 넘치는 그대로 두면서 마음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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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두봉’···한국·농민·농촌을 내몸보다 더 사랑한 우리들의 신부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안동시 목성동 언덕에는 가톨릭 안동교구청이 있다. 정호경 신부를 만나러 거기 가면 여러 동료 신부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어느 날 특별한 신부님을 뵈었다. 바로 프랑스인 두봉 주교이다. 첫 인상은 미소가 너무 밝고 환한 아저씨였다. 1970년대 후반 내가 처음 뵐 때 주교님의 나이 불과 50대 초반이었다. 1929년생이니 지금은 아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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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권정생 시인의 유언장 1순위 민들레교회 최완택 ‘피리’ 목사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권정생 선생은 꽤 많은 현금을 유산으로 남기었다. 그간 받은 인세, 원고료 등을 한푼도 쓰지 않고 10억원의 돈을 계좌에 그대로 적립했다. 이 돈은 남북한어린이돕기에 쓴다고 당신의 친필 유언장에서 밝혔다. 그런데 이 유산의 관리자를 지정했는데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사람 셋을 골랐다. 최완택 목사, 정호경 신부, 박연철 변호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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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간 아코디언 건네고 떠난 ‘도반’ 배영순 교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영남대 재직시절, 배영순(裵英淳) 교수란 분이 계셨다. 국사과 소속으로 나보다 두 살 위 동년배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늘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 활짝 웃는 표정을 별로 볼 수 없었다. 이 배 교수는 삶에 대한 진지한 통찰에 깊이 빠졌고 그 상념들을 틈틈이 기록해서 ‘배영순의 방하(放下) 생각’이란 칼럼을 문화일보에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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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무뚝뚝한 듯 살가운 송기원 “착하고 아름다운 이형, 시 열심히 쓰세요”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시인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송기원이 보내왔던 편지가 눈에 띤다. 겉으론 무뚝뚝한 듯하면서도 살가운 정을 자주 보여주던 송기원 형, 명이(明夷) 독서회 멤버로 더욱 친해졌지만 나이가 나보다 몇 살 위의 형이다. 내가 신동엽문학상 받던 날, 동아신춘 비평 시상식 날 일부러 와서 따뜻한 축하를 전해주던 분, 경기도 화성 발안의 월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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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

    ‘육이오 동갑나기’ 정호승이 이동순에게 “평화가 형과 함께”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시인 정호승(1950~ )은 경남 하동 출생으로 대구에서 성장했다. 원래 가문의 터전이나 근거지는 대구이지만 부친의 직장을 따라 다니다가 경남 하동에서 다만 출생했을 뿐이다. 대구 계성중, 대륜고, 경희대를 다녔다. 1973년 대한일보신춘에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1972년엔 한국일보 동시도 당선된 바 있어 시와 동시 두 분야에 관심이 깊다. 같은 197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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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1980년 5월 한 시인의 편지 “광주의 아픔 때문에 늘 잠이 오질 않습니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권일송 시인(1933~1995)은 전북 순창 출생으로 1957년 한국일보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당선작은 ‘불면의 흉장’, ‘강변 이야기’ 등이다. 전남대 졸업 후 목포에서 교사생활을 했다. 박봉우, 윤삼하, 황명, 박정만 등과 ‘신춘시’ 동인을 조직하여 활동했다. 언론사의 논설위원과 현대시협 회장을 지냈다. 시집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 <도시의 화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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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1980년 5월 20일 이현주 목사의 김재규 ‘장부한’ 考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80년 초반은 격동의 시기였다. 79년 말에 10.26이 일어났고 해가 바뀐 봄에 5.18 참변이 일어나 걷잡을 수 없는 현대사의 강풍이 휘몰아치던 시기, 나는 그해 4월 25일에 첫 시집 <개밥풀>을 발간했다. 지금 돌아다보니 엄청난 풍랑 속에 시집이 나왔다. 이 시집을 나는 정호경 신부께 맨먼저 헌정했다. 시집이 만들어지기까지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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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나무도 울고, 시인도 울었다···대구시 ‘무지막지’ 가지치기

    [아시아엔=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명예동해시민] 가로수는 한여름 내내 푸른 그늘 드리워 도로를 시원하게 하고 인간들을 위해 제 한 몸 다 바쳐 독한 매연 견디며 한 해를 힘들게 버티어왔다. 이제 행정 관청에서는 이른바 겨울준비를 한답시고 중장비를 동원해서 가로수의 사지를 마구 찢었다. 가지치기도 아니고 마구 찢어놓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꼴인가? 대구시 동구 불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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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주홍 작시 ‘독립의 아침’.. “탐욕의 모진 발톱 긁혔던 자리”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소설가, 아동문학가로 활동했던 향파 이주홍 선생의 생애를 생각한다. 1906년 경남 합천 출생으로 소년시절 서당에서 공부하던 중 거리의 기미년 독립만세 소리를 들었다. 이때 큰 정신의 각성을 받아서 서울로 갔다. 외로운 소년은 거리에서 껌과 인단을 팔며 공부의 꿈을 키웠지만 문이 열리지 않았다. 일본으로 건너가 그 꿈을 키우려했으나 현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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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몽실언니’ ‘강아지똥’ 권정생···일평생 바른삶·오로지 한길로, 글자마다 사랑과, 눈물과, 따스함이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권정생(1937~2007)이란 이름만으로도 눈물 난다. 안동 일직의 송리 1동 흙집 단칸방에서 살며 빼곡히 벽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책과 그 틈으로 고개를 쏘옥 내미는 새앙쥐와 살며 하늘이 내려주신 말씀을 동시, 동화로 기록하던 위대했던 영혼의 비범한 아동문학가를 생각한다.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이 바로 그런 기록이다. 우리 삶이 자칫 풍족한 물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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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가자 장미여관으로’ ‘즐거운 사라’ 마광수가 그립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오늘은 특별한 인물의 필적을 올린다. 한 마리 광마(狂馬)처럼 시대의 광야를 질주하다가 스스로 절벽을 향해 주저없이 뛰어내린 다재다능했던 한 시인의 친필이다. 실제로 그는 ‘광마’라는 이름의 자호를 썼다. 1951년 경기도 화성 발안에서 태어난 마광수, 어려서 종군사진기자였던 아버지를 잃고 외로운 소년으로 자랐다. 서울로 이주해서 대광중고를 졸업하고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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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그때 그 시절 군대생활 돌아보며…”어머니, 어머니”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내 나이 스물다섯에 군 입대를 했는데, 입소해보니 대개 서너 살 후배들이다. 하지만 머리 빡빡 밀고 국방색 훈련복을 입으니 나이랑 직업이랑 그 어떤 것도 깡그리 희석되고 증류수처럼 탈색되었다. 목청껏 내지르는 구호와 복창, 시도 때도 없이 불러대는 군가의 합창, 입소 첫날부터 삼엄한 일과가 시작되었다. 그저 달리고 뺑뺑이 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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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밥상 위 모든 것이 먼저 간 이들의 몸이었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내 첫 시집은 <개밥풀>(1980)이다. 그 시집 맨 앞에 실린 첫 작품은 ‘서시’이다. 시집의 전체적 방향성, 또는 가치관을 암시했다. 죽음이란 게 단지 비통한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의 이동, 혹은 새로 태어나는 것이란 그런 생각에 대한 절실한 경험을 담았다. 장자(莊子)는 아내를 잃고 장례식에서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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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꽃의 시인’ 스승 김춘수의 훼절과 제자 이동순의 ‘피눈물’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스승 김춘수 시인 이야기다. 그분은 대학시절 은사이시고 대학원 석사과정 지도교수이셨다. 흠모했던 만큼 곁에서 편모를 늘 보았다. 성품이 까다롭고 편하지 않았다. 꼭 필요한 말 외엔 말수도 적은 편이었다. 그분의 초기 시작품에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맑고 그윽한 감성이 좋았다. ‘소년’, ‘기(旗)’, ‘구름과 장미’ 시절의 시집들, 하지만 ‘타령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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