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 경제-산업

    1975년 벽두 ‘동아일보 광고란’을 채운 사람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74년 10월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언론사 대표들로부터 방위성금을 받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무서운 말을 했다.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과 도발을 앞으로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 거의 공갈과 협박 수준이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즉각 대학을 중심으로 반유신 물결이 고동쳤다. 독재정부는 곧바로 대학휴교령을 내렸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를 탄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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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나는 고발한다 대한민국 ‘정치시인'”···이승만정권서 문재인정권까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김춘수 시인 얘기가 나왔으니 역대 문인들의 정치 참여에 대한 이런저런 짧은 소감을 언급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인들의 현실정치참여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쌓아온 모든 성과에 상처를 입히고 허물어버리는 일이다. 짧은 기간의 달콤함에 현혹되어 자신을 송두리째 내버리는 무분별이다. 과거를 돌이켜보자면 일제말 친일문학 부류가 바로 그렇다. 제국주의 체제에 영합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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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50년 전 동아 신춘문예 응모와 당선···그 치열함과 숨가쁨에 대하여”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내가 늘 앉던 대학도서관 자리 창문 앞엔 커다란 은백양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바람이 불 적마다 나뭇잎이 팔랑거리는데 잎의 뒷면은 흰빛이었다. 신라 금관의 영락처럼 줄곧 떨리어서 그걸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내 삶에서 저리 빛나는 것은 몇이나 되는가? 나는 나를 온통 빛나게 할 수는 없을까? 어둡고 침울한 유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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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오늘 전태일 51주기, ‘어느 시인의 70년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70년부터 세태는 뒤숭숭했다. ‘오적 필화사건’으로 잡지가 폐간되고 11월엔 대구 출생의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와 노동자 기본권 보장을 외치며 스스로의 몸에 불을 붙였다. 이 분신은 반독재와 민주주의 진보를 위한 거룩한 피눈물의 점화였다. “근로기준법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억압적 착취구조의 비리와 모순에 저항하는 외로운 절규는 들불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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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마흔셋에 날 낳고 열달만에 부인 잃은 아버지의 40년전 편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아버님이 살아계셨다면 올해로 113세가 되신다. 1908년 출생이니 윤봉길 의사, 나비연구가 석주명 등과 같은 해 출생이다. 소설가 김유정, 시인 유치환과 동갑이다. 일제의 수탈기관 동양척식회사가 만들어져서 본격적으로 가동한 해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의 반생은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서 살으셨다. 왜정 말기엔 일본 고쿠라로 가서 발전소 건설현장의 잡역부로 일하셨다. 독립운동가의 일곱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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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 늦가을, 먼저 떠난 제자 백창일 시인이 왜 이토록 그리울까?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백창일이라는 시인이 있었다. 1991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데뷔했다. 1998년 첫 시집 <나는 부리 세운 딱따구리였다>를 실천문학사에서 발간했고 4년 뒤에는 시와시학사에서 두 번째 시집 <모든 사랑은 첫 사랑이다>를 펴냈다. 1961년 전남 흑산도에서 태어나 힘든 청소년 시절을 보냈고 내가 교편을 잡고 있던 충북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시론, 문학개론, 현대문학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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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하여튼 나가서 봅시다” 25년전 황석영의 옥중 연하엽서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작가 황석영 선생의 삶은 늘 풍파를 몰고 다니거나 풍파 속에 있다. 1943년 중국 장춘 출생으로 태어난 직후에 8.15해방을 맞고 분단 직전에 가족들과 38선을 넘어오게 된다. 초등 입학 직후에 6.25전쟁을 만났고 고등 입학하니 4.19민주혁명이 일어났다. 잇달아 5.16군사쿠데타를 겪었고 20대 초반, 군에 입대를 했는데 뜻밖에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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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어언 회갑’ 여제자의 35년 전 편지 속 ‘다짐’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퇴직할 때 근속년수가 41년이었다. 어지간히 장구한 세월을 교단에서 보냈다. 숱한 제자들이 바람처럼 파도처럼 거쳐갔다. 이름을 기억하는 제자도 있고 얼굴만 기억하는 제자도 있다. 안동간호대학 3년, 충북대 국문과 10년, 영남대 국문과 25년, 나머지 3년은 교사 시절이다. 만나고 문하를 거쳐간 제자들은 모두들 제 구실과 역할을 잘 하고 있으리라. 선생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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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잊혀진 노동자시인 박영근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노동자 시인 박영근, 그는 1958년 전북 부안에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힘든 삶을 살다가 2006년 결핵성 뇌수막염으로 세상을 떠났다. 영양실조와 각종 질병 속에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발견되었는데, 그때 시인의 나이 불과 47세 때였다. 구로공단 노동자가 되어 노동자의 눈으로 사물과 세상을 보는 특별한 시를 쓰기 시작했고 1981년 동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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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정호경 신부님, 엽서 한장에 그리움이 사무칩니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옛 편지 뭉치 틈에서 참으로 반가운 필적 하나를 찾았다. 정호경 신부님이 96년 4월에 보낸 엽서다. 마치 신부님을 직접 대한 듯 반가움이 왈칵 일어나 잡고 쓰다듬지만 신부님께서는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돌이켜 보니 1976년에 처음 뵈었고 이후 안동 시절 3년 내내 나의 정신적 후견인으로 자리하셨다. 프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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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35년전 작가 김성동 결혼식 사진 보며 “인생이란 별별 일이 다 있어”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80년대는 그래도 어울리는 기회가 더러 더러 있었던 편이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모임이 수시로 열렸고 신동엽 생가와 시비를 답사하는 행사도 해마다 봄만 되면 출발했다. 잊을 만하면 모임의 소식이 날아왔고 나가면 세상의 모순과 부조리가 낱낱이 까밝혀져 비분과 강개를 자아내었다. 이러한 어느 날, 뜻밖에도 작가 김성동의 혼인 소식이 알려졌다. 정처없는 영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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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젠틀맨 시인’ 김사인과 걷던 눈발 뿌리던 모스크바 중앙역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생각만 하면 그리운 사람이 있다. 시인 김사인(1956~ )이 그런 경우다. 편하고 부드럽고 잘 웃고 예의 바르지만 판단에 엄정하고 상대를 늘 먼저 배려하는 그런 점에서 김사인은 젠틀맨이다. 지금 한국문학번역원 원장을 하는데 그의 초청을 받아 모스크바를 함께 다녀온 적이 있다. 해외 한국문학사 현장을 다니며 한국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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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카자흐스탄 계봉우 옛집서 독립운동가 여흔 찾다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 시내 고려인 공동묘지에 묻힌 독립운동가 계봉우 선생의 무덤과 흉상이 있다. 돌비석에 새겨진 그 부인 김야간 여사의 얼굴도 보인다. 크질오르다 시내엔 계봉우 선생이 살던 집이 남아있다. 선생의 아드님 계학림 옹이 아흔 넘은 나이로 일행의 안내를 맡았다. 이 댁에서 계봉우 선생은 민족문화 저술을 많이 정리했다. 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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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천태산 은행나무’ 아래서 시도 읊고 노래도 부르고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지난 주 토요일(23일) 오후 2시 충북 영동 계산리 송재휘 고가에서 ‘시와 에세이’가 주관하는 ‘천태산 은행나무 詩祭’가 열렸다. 그곳은 19세기 말에 건축된 옛집이다. ‘시에’ 양문규 대표가 기획한 이 행사에는 전국에서 48명의 시인, 예술가들이 참석했다. 코로나 때문에 50명 제한이라 두루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가 바이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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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시인의 손편지] 민영 “李형같은 젊은분께서 힘 실어주었으면”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어떤 경우든 글을 읽어보면 그분의 성품과 기질, 습성까지 느낄 수 있다. 민영 시인이야말로 자상하고 따스하며 정겨움이 뚝뚝 느껴지는 기품이라는 것을 느낀다.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다보면 더욱 그러한 기질과 분위기를 실감한다. 1934년생이시니 어언 아흔 고개에 이르셨다. 늘 한복을 즐겨 입으시고 나지막한 키에 가느다란 몸매로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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