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경북대 국문과 ‘전설의 선배시인’···권기호·전재수·권국명·도광의·양왕용·이창윤·윤성도·이정우
경북대 문리대 국문과에는 전설적 선배들이 다수 있었다. 모두 김춘수 시인으로부터 감흥을 얻고 강의를 들었으며 자극을 받은, 그중 상당수는 김춘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그런 경력의 소유자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은 김춘수 시인의 문하생으로 일종의 동문 엔솔로지라 할 수 있는 “에스프리(Esprit)” 동인을 결성했다. 사화집(詞華集)도 꽤 여러 권 발간했다. 이 에스프리는 기지(機知), 재치를 뜻하는 프랑스…
더 읽기 » -
신간소개 담당 기자님·피디님·작가님·평론가님들께 ‘꿀팁’
새로 발간하는 시집이나 산문집, 저서가 거의 매일 같이 도착하곤 한다. 내가 시를 쓰는 사람이니 그 우편물 중에는 시집이 가장 많은 편이다. 월간이나 계간 문학저널들도 꽤 자주 온다. 개인저서들을 받으면 마음 속에 부담이 느껴진다. 이 책을 기획하고 발간하느라 얼마나 힘든 고통의 시간을 겪었을까? 발간에 이르기까지 한 편 두 편, 작품쓰기에 골몰해서…
더 읽기 » -
사회
<앉은뱅이의 노래> 남기고 떠난 시인 이정우 알베르토 신부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영남대 명예교수] 1969년 봄이었다. 경북대 문리대 국문과에 입학하니 전설적 선배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K, H, L 선배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그들이 늘 전전긍긍하는 글방에 가면 습작한 원고지를 쌓아놓은 더미가 가히 키높이 쯤은 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나는 그 말에 미리부터 주눅이 들었다. 전설적 선배들 부근에도 다가가지 못하고 그들 또한 아득한…
더 읽기 » -
동아시아
문학 모든 장르 두루 섭렵 ‘최광렬’을 기억하십니까?
최광렬(崔光烈, 1925~1995)이란 분이 있었다. 시, 소설, 희곡, 문학평론 등 문학의 모든 장르를 두루 헤집고 다니며 글을 썼다. 경북 포항 출생으로 대구사범, 동국대를 중퇴했다. 1951년 전쟁 시기 대구에서 발간되던 잡지 <전선시초>에 평론 ‘전쟁과 시’를 발표했고 이후 ‘한국 비평문학의 빈곤을 말함’으로 당시 피난지 문단의 반향을 일으켰다. <꽃과 전쟁>, <천사와 허깨비의 합창>, <한국현대시…
더 읽기 » -
사회
먼 발치로만 바라본 인연, ‘풀잎 끝의 이슬’ 이승훈 시인
사람은 길을 잘못 접어든 경우라도 어떤 번민과 용틀임 끝에 반드시 자신의 길을 찾아 접어들게 된다. 이승훈(李昇勳, 1942~2018) 시인이 그렇다.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의사를 꿈꾸었으나 공학도 시절을 거쳐 결국 시인이 되었다. 부친은 공공의로 시골을 옮겨다녔으며 가족들도 가장의 이동에 따라 함께 이사를 다녔다. 이런 표류와 같은 생활 속에서 소년 이승훈의 시인적 감성이…
더 읽기 » -
사회
대구 명물 ‘미도다방’서 쌍화차와 부채과자에 진한 향수
대구의 중심가인 중구 진골목엔 “미도다방”이라는 오래된 찻집이 있다. 60년대식 다방 풍경을 그대로 실감하게 해주는 이 미도다방의 주메뉴는 계란 노른자를 띄운 쌍화차. 어떤 차를 마시든 탁자엔 그릇에 담긴 옛날식 부채과자가 수북히 담겨있다. 주인마담은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정인숙 여사. 이곳 주변에서 50년 넘게 자리를 지켰다. 대구 사람으로 미도다방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근대골목…
더 읽기 » -
동아시아
“1977년 12월 2일자 육군 052탄약창 제대명령서 한번 보실래요?”
내 어릴 적 아버지는 온갖 것을 모아두는 습관이 있었다. 물품을 포장한 노끈에서부터 묶어싼 보자기는 물론 안에 든 메모까지 편지 모아두기는 기본이셨다. 부고로 왔던 불길한 소식이 담긴 봉투는 담장 목재 틈새나 변소 천장 나무 틈에 끼워두고 절대 보거나 손을 대지 말라 하셨다. 아버지의 물품 보관은 거의 굵게 쪼갠 대나무를 얽어 짠 큰…
더 읽기 » -
동아시아
그 시절, 중앙일보·동양방송 원고지에 쓴 심만수 손편지 “동수니兄···”
심만수(沈萬洙)라는 이름이 있었다. 경남 창녕 출신으로 대구로 이주해서 대구고를 거쳐 영남대 국문과를 졸업한 소설가였다. 홀어머니랑 둘이 살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였다’라는 말은 이젠 소설가가 아니란 말이다. 그는 일찍이 <문학과지성>을 통해 중편소설이 뽑혀서 등단했다. 김현을 비롯한 그곳 비평가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중앙일보, 문예중앙 등을 거치며 출판 경력을 쌓았는데 마침내 독립출판사 ‘살림’의 설립자가…
더 읽기 » -
통일전망대서 북녘산하 물끄러미 바라보다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올라 북녘 산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도 말없이 숨죽이고 있는 국토, 피 흐르는 몸에 온통 가시철조망 둘러쓰고 지그시 눈 감고 있는 국토, 민통선, 남방한계선,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 갈매기들은 모래톱에 등 돌리고 서서 멀리 수평선만 바라본다.
더 읽기 » -
동아시아
생명존중·생명사랑·생명받들기 정호경 신부의 ‘남북이’와 ‘통일이’
세월이 갈수록 더욱 새록새록 그리워지는 그런 살뜰한 분이 있다. 정호경 루도비꼬 신부가 바로 그런 분이다. 내 나이 20대 후반, 안동에서 처음 만나 인연을 가졌고 친형님 이상으로 극진하게 사랑과 정성과 기도를 주셨던 분. 내가 문학의 방향을 제대로 찾을 수 있도록 엄정한 길잡이를 해주신 분. 수시로 제 길을 가고 있는지 직접 찾아와…
더 읽기 » -
사회
‘만다라’ 외우 김성동, “천재 청년 그때 그 모습 함께 되찾세나”
벗을 못본 지가 20년도 넘었습니다. 최근 페북에 벗의 편지를 몇 번 올리다 벗이 왈칵 그리워졌습니다. 대구에서 충주까지 차를 몰아 178km, 그 먼 거리를 맹렬히 달려갔습니다. 어서 보고싶은 기대와 설레임으로… 하지만 막상 대면한 벗은 너무 황폐해져서 예전의 벗이 아니었습니다. 실내에서 발걸음도 제대로 옮기지 못하고 언어기능도 순조롭지 않습니다. 집안은 온통 책과 쓰레기만…
더 읽기 » -
동아시아
시인 김수복을 첫 동문 단국대총장으로 이끈 매력은 ‘충직’
김수복(金秀福, 1953~ )은 시인이며 현재 단국대학교 총장이다. 경남 함양 출생으로 1975년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나왔다. 대구 대륜고등을 졸업한 지역 후배 시인이다. 대륜고등의 이름은 식민지시절에 대구교남학교(大邱嶠南學校)였으며 이상화 시인이 영어교사였고 교가를 지었다고 한다. 상화 시인은 교남학교 재직 시절, 일본에게 이기려면 주먹이라도 세어야 한다며 제자들에게 권투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육사 시인도 교남학교와 인연이…
더 읽기 » -
동아시아
30년전이나 지금이나···”저 광막한 세상을 내가 걸어가야 한다”
내가 청주생활 10년을 정리하고 대구로 옮긴 이듬해이다. 책이랑 기타 등속은 어느 정도 정돈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안정이 되질 않았다. 새 직장의 분위기도 불안정이었다. 국회의원이 된 특정교수를 몰아내기 위해 학생들이 격렬한 투쟁을 벌인 직후라 학과회의가 열린다고 해도 학과장이 아주 공식적 전달사항만 전하고 교수들은 서로 시선을 피했다. 회의는 물론 짧은 시간에 끝났다. 수업시간에…
더 읽기 » -
동아시아
베레모에 파이프 담배 조병화 시인 “럭비는 나의 청춘, 그림은 나의 위안”
조병화(趙炳華, 1921~2003) 시인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난실리 출생으로 일제말 서울의 경성사범을 졸업한 뒤 일본 동경고등사범으로 유학 길을 떠나 그곳에서 물리와 화학을 전공했다. 자연과학을 전공한 시인 이력이 드문데 이 부분에서 그의 존재는 이채롭다. 1949년 시집 ‘버리고 싶은 유산’으로 등단한 뒤 일생동안 무려 53권의 시집을 발간했다. 시집 발간 분량으로는 한국시인 중 단연…
더 읽기 » -
사회
김명인 시인 47년 전 편지 읽으니 뜨거운 가슴에 왈칵 그리움이
[아시아엔=이동순 시인]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누구나 온갖 힘든 일, 험한 과정을 두루 겪어왔으리라. 그런데 그것을 곰곰이 되짚어보면내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겪어내 지 않고 주위의 친구, 선배, 정인들의 각별한 염려와 걱정, 배려와 충고, 끊임없이 보내주는 격려와 부추김 속에서 비로소 힘을 얻고 어금니 깨물며 악전고투로 견디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를 두고…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