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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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권정생 추모시 ‘민들레꽃’ 지은 오승강

    진정 가련한 것, 세상에서 가장 낮고 비천한 것, 슬프고 처연한 것을 껴안고 사랑할 수 있어야 그를 시인이라 부를 수 있다고 시인 백석(白石, 1912~1996)은 힘주어 말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의 가장 귀해 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고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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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임병호 삶의 최종적 구원은 ‘시’였으리라”

    대체 시가 무엇이고 시인이 무엇인지 한참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어서 시에 온 생애를 기대고 의탁하며 오로지 시가 모든 삶의 최종적 구원이라 생각하던 한 기행(奇行)의 사내가 생각난다. 1970년대 후반, 경북 안동. 소백산 자락에 종일토록 눈 내리고 차가운 바람은 불어 옷깃을 파고드는데 아무리 두툼한 옷을 껴입어도 마음은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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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이세룡 형, 우크라이나 평화를 빌어주오

    한 시인이 이승에 머물 때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더러 있으나 세상을 떠난 뒤에는 곧 잊혀져 그 누구도 기억하는 이가 없게 된다. 김소월, 한용운, 윤동주 같은 시인들은 이미 시간성과 공간성을 초월해서 고전의 세계로 올라가 있지만 이름의 크기나 용적이 작거나 미미한 경우 쉽게 망각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이후에 태어나고 자란 세대들에게는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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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 시인의 추억과 사유] ‘백석시전집’과 이시영

    20대 시절엔 내가 과연 저서란 것을 발간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저자가 될 수 있을까를 막연히 고민했다. 그런데 평생을 대학에서 보내고 등단 50년이 되는 해에 이르러 그간 발간했던 이런 저런 저서의 목록을 살펴보니 거의 70 여권이나 된다. 알찬 실속도 없이 가짓수만 잔뜩 늘인 것 같다. 한 권 한 권의 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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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호방한 강태공 전영태의 ‘유혹과 몰입의 기술’

    무언가를 치밀하게 궁리하거나 조직적 체계적 준비를 하지 않고도 다소 산만한 느낌으로 살면서 큰 성과를 이루는 그런 친구가 있었다. 비평가 전영태(田英泰, 1949~ )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1973년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 당선자로 그해 ’73그룹’ 조직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런 조직이나 모임에 가담하는 걸 싫어했다. 서울 종로의 밤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여러 술꾼들과 골목에서 인사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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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정호승의 ‘샘터’ 원고청탁서

    아래 사진과 같은 원고청탁서를 보셨는가? 친구의 찢어진 양복수선비에 도움을 주려고 일부러 특집원고 집필을 요청한다는 내용이다. 그 양복에 대해서 나는 전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친구들은 양복과 어떤 사연이 있었나보다. 문단에서 가장 다정한 내 친구 시인 정호승의 발자취를 돌아다 본다. 지금은 전업작가로 활동하지만 지난 1980년대만 하더라도 그는 여러 직장을 이동해서 옮겨다녔다.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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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인연이 아니면 끝내 연결과 지속을 거부한다”

    인연(因緣)이라는 말이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참으로 적절한 실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것은 전혀 예상치 않았는 데도 마치 누가 시킨 듯이 찾아오기도 하고 이런저런 여건이 갖춰졌음에도 함께 할 인연이 아니면 끝내 연결과 지속을 거부한다. 하기야 수십 년을 함께 한 부부나 친구의 경우에도 인연이 다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작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인연인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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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옛 사진 한장이 뿜어내는 세월의 빛깔과 향기

    오래된 사진 한 장을 가만히 음미하듯 들여다 봅니다. 칼라가 나오기 전 길거리 스냅으로 찍은 흑백사진이고 숱한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풍랑의 발자국이 여기저기 찍혀있지요. 원래 매끈하고 반짝였을 표면이 거의 구겨지거나 잔주름, 혹은 긁힌 자국으로 가득합니다. 바위도 주름이 진다는데 조그마한 종이사진 한 장이 지금껏 없어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한 데요. 긴 세월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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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연변시인 김정호

    한때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을 오고싶어 난리법석이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들은 한국을 오고싶어도 초청장이 없어서 전혀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초청장의 위력은 대단했다. 연길 부근 모아산 정상을 오른 적이 있는데 거기엔 온통 한국초청장 판매광고로  가득했다. 지금은 전국의 식당이나 각종 일터에 조선족들의 취업이 아주 흔히 눈에 띠지만 9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취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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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단시대 ‘매몰시인’ 조벽암을 아십니까?

    나는 일찍부터 분단시대 매몰시인에 큰 관심을 가졌다. 분단이란 태풍 끝의 산사태와 같은 것이어서 와르르 무너질 때 거기 압사하고 즉각 매몰된 어이없는 인물들이 많았다. 그리보면 ‘매몰차게’란 단어의 어감이 심상치 않다. 이데올로기가 있든 없든 그 매몰은 가리지 않고 한꺼번에 묻어버렸다. 분단시대 한국현대문학사는 그 때문에 불구적이고 반쪽이다. 넣을 사람 넣지 말아야 할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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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안도현 시인이 사돈 맺은 사연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그 사람이 좋아서 자꾸 가까이 하고싶고 또 그 반대의 경우인 사람도 있다. 시인 안도현은 늘 가까이 하고싶던 후배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지난 1978년, 안동간호전문대학 교수로 일하던 시절, 경주 신라문화제에서 공식적인 초청이 왔고 거기 전국고교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때 발제자가 미당인지 목월인지 뚜렷하지 않다. 하루가 저물어 심사결과도 발표하고 가방을 챙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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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전축’을 기억하시는지요?

    ‘장 전축’이라고 기억하시는가? 축음기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손으로 태엽을 감던 것이 전기의 힘으로 돌리며 분당 33회전으로 LP음반을 돌리는 전축은 대단히 획기적인 혁신이었다. SP는 분당 78회전이니 금방 끝나버리는데 LP는 한결 느릿느릿 돌아가고 그 음반 한쪽 면에 노래 7곡 정도가 들어가니 여유를 가진 느긋한 음악감상이 가능했다. 늘 휴대하고 다니는 전축도 있었지만 집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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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바다물결 거센 요즘 나기철 시인 잘 지내오?”

    제주에 가면 늘 즐겨 찾는 숙소가 있다. 서귀포 중문의 H파크텔인데 그 높은 층에서 바라보는 바다 전망이 참 좋다. 양쪽으로는 나지막한 산을 끼고 있으며 그 사이로 선연한 수평선이 길게 걸려 있다. 아련히 범섬과 형제섬도 보이고 맑은 날은 마라도의 윤곽도 아스라히 보인다. 그런데 이 숙소의 위치가 바로 중문에 주둔하며 지역의 ‘빨갱이’를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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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승-이동순 시인의 50년 각별한 우정

    시인 정호승(鄭浩承, 1950~ )과는 동갑으로 1973년 같은 해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이다. 성장한 곳도 대구라는 동일지역이라 73 동기들 중에서도 유난히 가까웠다. 아무래도 자주 전화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만나는 기회도 그만큼 잦았다. 동년배로는 정호승 시인이 유일했지만 늘 서로 깍듯한 경어를 쓰며 편지에서도 ‘제가’라는 극진한 표시를 했다. 그렇게 여러 해를 보내던 중 그게 무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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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윤명란 독자가 이동순 시인한테 보낸 봉함엽서 속엔…

    문학을 즐기는 독자들은 언제 어디에 살고 있더라도 항상 문학작품을 읽고 거기 서린 묘미를 뽑아내어 스스로 삶의 생기와 활력을 얻을 줄 안다. 이런 독자들의 안목은 꽤 수준 높다. 오늘 소개하는 편지는 미국 LA에서 살고 있는 한 교민이 보내온 봉함엽서이다. 제한된 지면에 아주 빼곡히 써내려간 그의 문학 사랑과 바지런한 삶의 모습은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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