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순

시인
  • 동아시아

    [추모] 이동순 시인 “외우 김성동 이승에서 고생 많으셨소, 잘 가오”

    이대로 그대를 그냥 보내드리기가 너무도 슬프고 애가 타며 가슴이 아프오. 형은 이 흉한 속세에 더 이상 어울릴 수가 없었소. 그 맑고 고결한 영혼과 사상은 온통 상처와 피멍과 얼룩 투성이였지요. 그래서 주구장창 안주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소줏잔만 기울였지요.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여기다가 두 팔을 벋어 허공에 내두르며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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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2022 추석 리뷰①] 시인 이동순-안과의사 이응 부자의 동해안 라이딩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무더위와 태풍이 지나간 가을 풍광이 어떤 느낌이신지요? <아시아엔>은 페이스북에 나타난 글과 사진을 통해 2022년 추석을 리뷰하면서 올 가을 평화와 풍요를 함께 기원합니다. <편집자> 지난 2년간 원고 쓰고 책 내고 하느라 그 좋아하는 자전거를 전혀 타지 못 했다. 팽팽하던 허벅지가 물렁살 되었다. 아랫배도 나오고 기력도 지구력도 약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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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박시교 시인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

    박시교(朴始敎, 1947~ )란 시인이 있다. 경북 봉화 출생의 그는 197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그는 시조작품을 쓰는 시인이다. 그때 당선 시는 ‘온돌방’이란 제목이다. 실제로 온돌방의 따뜻함처럼 푸근하고 정겨운 다수의 시작품을 잇따라 발표했다. 그의 여러 작품 중 늘 가슴에서 잊히지 않는 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란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가슴에 간직한 아름다운 이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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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어머님전 상서’ 2절 부를 때 돌연 설움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 12일 오후 3시 부산 금정구 홍법사 법당에서 열린 ‘아시아의 평화와 새로운 인권연대를 위한 일본군 위안부 상생 한마당’에 출연했다. 위안부 여성들이 당시 굴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때 그나마 작은 위로를 주던 옛 노래 3곡을 무반주 아카펠라로 불렀다. 세번째 노래 ‘어머님전 상서’ 2절을 부를 때 돌연 설움이 북받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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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친일연구가’ 임종국이 자료대출 엄격한 까닭

    <친일문학론>을 쓰신 임종국 선생의 친필편지를 소개한다. 선생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자료를 절대 빌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만약 빌려주게 되면 그것을 ‘변절(變節)’이라고 했다. 이 변절이란 표현이 싫어서 또 항의 편지를 하나 더 보냈다. 선생의 모든 자료는 지금 민족문제연구소에 있다. 만년에 몸도 편찮으신 분께 번거롭게 고통과 불편을 드린 듯해서 무척 송구스럽다. 李東洵 氏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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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죽음 앞둔 ‘만다라’ 김성동을 그리며

    오랜 친구 정각(正覺) 김성동에게  이 한 해에 가까웁던 벗들이 하나 둘 병으로 쓰러져 몇은 백골이 되고 또 몇은 병상에 누워 마지막 숨을 할딱인다. 괴질 때문에 가서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이러한 때 옛 친구 김성동의 슬픈 소식이 왔다. 지난 봄 영춘화 피던 날 충주의 벗이 살고 있는 거처를 힘차게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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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백석 애인 ‘자야’의 35년 전 편지 다시 읽으며

    옛 편지를 정리하다보디 백석(白石) 시인의 애인이었던 할머니 자야(子夜) 여사의 편지가 많이 쏟아져 나온다. 정식 문장수업을 받지도 않았을 텐데 문장의 흐름이 반반하고 단정하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또 1930년대 문학인들과의 교유가 많았던 덕분이다. 마치 내간체를 읽어가는 듯 강물처럼 담담히, 때로는 격정을 쏟기도 하고 가슴 속 켜켜이 쌓인 마음의 실타래를 하염없이 풀어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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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등단 40년 고운기 시인의 ‘고요의 이유’ 사례

    고운기(高雲基, 1961~ ) 시인은 전남 보성 출생이다. 한양대 국문과와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 고전문학, 그 중에서도 <삼국유사>에 대한 연구가 깊어 여러 권의 저서를 발간했다. <길 위의 삼국유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 등이 그것이다. <삼국유사> 및 일연스님 관련 유적지 답사와 해설로는 그를 능가할 사람이 없다. <삼국유사>의 문학성에 관해서는 가히 국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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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은사 김춘수 시인과 ‘일관성에 대하여’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은 대학시절의 은사였다. 1960년대 후반, 경북대학교 문리대 국문학과에 입학해서 현대문학사, 시론 등의 강의를 들었다. 성품이 차갑고, 온유함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강의는 시종일관 멋스럽고 지적 매력이 감도는 분위기를 지녔다. 오죽하면 강의노트를 받아적으며 기침소리까지도 기록했을까. 대학원에 진학했을 때는 석사과정 지도교수를 맡으셨다. 졸업논문은 1930년대 김기림 모더니즘의 서구수용 연구였다. 지도방식은 오로지 자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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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친일문학론’ 임종국 “작은 일이라도 변절(變節)은 변절”이니까요

    임종국 선생은 <친일문학론> 한 권만으로도 우리 시대의 서슬푸른 선지자이셨다. 민족사의 암울한 안개를 걷어내고 자랑찬 역사를 일으켜 세우려 뼈를 깎는 고통을 스스로 감내하셨다. 이런 분께 가까이 다가가 잠시나마 친견을 할 수가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청복을 누린 셈이다. 돌아가시기 직전 직접 찾아가 선생님께 억지를 부리고 강짜를 놓았으니 나도 어지간했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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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살다보면 이런 절묘한 순간도···”열차 바퀴소리도 덜커덩 들리고”

    참으로 우스운(?) 경험을 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밤 9시6분 대구교통방송(TBN) 생방송 프로가 있습니다. 제목은 “달구벌가요사”. 대구의 대중음악사를 더듬으며 노래 두 곡을 보내드리는 토막 코너인데요. 늘 15분 정도의 생방에 출연하지요. 술을 먹다가도 운전을 하다가도 항상 방송시간이 되면 초비상으로 조용한 공간에서 대기합니다. 그런데 하필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는 KTX 열차 안에서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송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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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김규동 선생님 시정신은 어둔 밤 등불처럼 또렷”

    서가에서 예전에 보던 책을 문득 꺼내어 펼치는데 책갈피 사이에서 편지 하나가 툭 떨어진다. 집어들고 보니 낯익은 필체다. 김규동 시인께서 직접 보내주신 친필편지. 읽을수록 장엄하고 바하의 무반주첼로 선율을 듣는 듯하다. 돌아가시기 불과 1년 전에 쓰셨다. 선생님께서 세상을 뜨신지 어언 11년, 기억은 점점 흐릿해지는데 엄정하신 선생님 목소리와 시정신은 어둔 밤 등불처럼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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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권정생 선생님” 나직이 불러봅니다

    안동시 일직면 조탑안길 57-12, 권정생(權正生, 1937~2007) 선생이 사시던 집, 이 작고 초라한 오두막집에서 대작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쓰셨다. 작은 밥상에서 원고를 쓰다보면 책더미 틈에서 생쥐가 나와 돌아다녔다. 70년대 말, 정호경 신부 주관으로 안동독서회가 조직되어 마리스타수도회관에서 독서토론을 할 때 핼쓱한 얼굴로 벽에 기대어계시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모두가 함께 같은 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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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신간발행 중독증과 제자의 서명 요청

    그간 시집이나 저서를 숱하게 발간하곤 했지만 제자들이 자기 선생의 신간을 직접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나 드물다고 해야겠다. 어쩌다 어디선가 내 시집을 구해와서 서명을 요청하는 경우는 썩 드물게 있었다. 그런데 이 편지의 주인공은 아주 특별한 경우다. 자기 선생의 시집 발간 소식을 듣고 일부러 서점을 찾아가서 시집을 현금을 주고 구입했기 때문이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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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순의 추억과 사유] 치밀하고 올곧은 순국선열 조부의 친필을 대하며

    일제에게 빼앗긴 나라의 주권을 되찾으려 애써 분투하다 순국하신 저의 조부님 이명균(李明均, 1863~1923) 의사가 세상에 남긴 친필 간찰입니다. 글씨에서 당신의 치밀하고 올곧은 성품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듯합니다. 대구의 어느 골동가게에서 우연히 구한 보물입니다. 이를 한학자 권경열님이 번역해주셨습니다. 조부님 사망원인은 대구형무소에서 왜적의 혹독한 고문으로 뼈가 부러지는 골절, 손목과 발목의 뼈가 이탈되는 수족탈골, 송곳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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