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양희(1942~ ) 시인이 바로 그분이다. 나는 그녀를 잘 알지 못한다. 문단행사에서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지만 살뜰한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왠지 어둡고 침울해 보이는 얼굴표정에 가슴이 저려서 그 사연을 궁금히 여긴 적이 있다.
한 유명시인의 아내로 살다가 그와 헤어진 뒤로 줄곧 혼자 살며 시를 써왔다. 그의 시는 감성적이고 진솔하며 자기 앞의 운명에 대결하는 자세로 평가된다. 방향 없는 막막한 세계에서의 길 찾기, 인간과 삶, 자연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아내는 그런 작업에 대체로 성공을 거두는 시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독과 고통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과정이다. 그 원인과 배경에는 사랑과 이별이 있다. 그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하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감격하게 하고 잠시나마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삶의 원천적 질료가 아닌가?
시인 천양희는 시 ‘사람의 일’에서 그러한 시적 통찰을 그림처럼 보여주고 일기처럼 담담히 고백한다.
고독 때문에 뼈아프게 살더라도
사랑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고통 때문에 속 아프게 살더라도
이별하는 일은 사람의 일입니다.
사람의 일이 사람을 다칩니다.
사람과 헤어지면 우린 늘 허기지고
사람과 만나면 우린 또 허기집니다.
언제까지 우린 사람의 일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요.
사람 때문에 하루는 살 만하고
사람 때문에 하루는 막막합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사람의 일이라서
우린 또 사람을 기다립니다.
사람과 만나는 일 그것 또한
사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천양희, ‘사람의 일’ 전문
여러 해 전 내가 어느 문학상 심사를 보았을 때
최종으로 오른 후보 중 나는 천양희 시인을 밀었다.
다른 후보와 접전으로 팽팽한 대결이 생겼을 때
내가 중간에서 캐스팅보드가 되어
천양희 시인에게 표를 던져 최종 낙점이 되었다.
문학상이란 것은 시작품도 훌륭해야겠지만
삶에 물질적 고통을 겪는 시인에게
그 혜택이 먼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당시 천양희 시인은 서울의 어느 임대아파트에서
기초생활이 어려운 생보자로 산다는 얘기를 들었다.
말하자면 생계가 어려운 영세민의 힘든 삶을
시인이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몹시 가슴이 아팠었다.
그래서 그날 끝까지 내 주장을 관철했던 것이다.
수상자가 언론에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
나는 시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소식을 전했다.
그때 감격으로 떨리던 시인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살아간다는 것의 보람은 바로 이런 일이 아닌가?
힘든 시간 살아가던 시인이
나 때문에 기쁨과 감격을 누릴 수 있으니
나는 그날 즐거운 소식을 전하는 집배원이었다.
두고 두고 흐뭇하며 유쾌한 추억이었다.
내가 시집 <가시연꽃>을 발간해서 보냈을 때
그걸 받고 짧지만 깊은 울림이 있는
붓으로 쓴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내주셨다.
시정신 놓치지 않고
늘 정진하시는 모습
생생합니다.
좋은 시, 환한 생(生)
기원합니다.
1999. 12. 22
천 양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