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다시 읽는 ‘설악무산의 방할’

<설악무산의 방할>(김병무·홍사성 엮음, 인북스, 2023년 2월 출간)은 조오현 큰스님의 깊은 삶과 가르침, 그리고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기억을 담은 뜻깊은 책이다. 이 책은 무산 조오현 스님이 입적한 지 5년이 지난 시점에 출간됐으며, 50년 전 스님과 사형사제 관계였던 김병무 시인과 문학평론가 홍사성이 정성스럽게 엮어냈다.
조오현 스님은 한국 현대 불교계와 문단에서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설악산 신흥사 조실로서 종단의 큰 어른이었을 뿐 아니라, (시조)시인으로서도 깊은 울림을 전한 분이다. 특히 ‘선시(禪詩)’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시어로 승화시킨 그의 작품들은 오랫동안 불교계와 문단의 경계를 넘나들며 읽혀왔다. 무산 스님은 생전에 ‘시(조)를 쓰는 스님’이기 이전에, 삶 그 자체를 시처럼 살았던 분이었다.
책 제목 <설악무산의 방할>에서 ‘방할(棒喝)’은 스님께서 생전에 즐겨 쓰신 표현으로, 봉갈(棒喝)로 쓰고 읽을 때 선가에서는 방할로 읽는다. ‘몽둥이와 꾸짖음’이란 뜻으로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 사정 두지 않고 직접적으로 이를 때를 말한다. 이는 조오현 스님의 수행과 시, 인생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드러나는 정신이기도 하다. 엮은이들이 모은 여러 기록과 회고, 스님의 어록들은 그가 단순한 종교인을 넘어 존재 자체로 하나의 철학이었음을 보여준다.
2002년 7월 처음 큰스님을 뵌 이후 그는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영향을 준 분 가운데 한 분이 되셨다. 2003년 동안거 결제일에 스님은 내게 ‘호당(虎堂)’이라는 법호를 주시며, ‘傳堂 不響山谷 無影樹下 有虎堂 李相起 丈室 2003 結制日 萬嶽’이라는 친필을 써주셨다. 너무도 감사했지만, 그 뜻이 너무 무거워 늘 감당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다. 이 짧은 문장 속에 무산 스님이 필자를 포함한 제자나 지인들에게 던지는 신심(信心)과 기대, 그리고 책임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무산 스님이 입적한 지 올해로 7주기를 맞는다. 음력 4월 12일, 양력으로는 오는 5월 9일이 그 날이다. 세월은 흘렀고, 스님을 따르던 김병무 시인 또한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엮은이들은 생전 스님과의 인연을 떠올리며 “세월도 사람도 무상하고 무심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무상함 속에서 피어나는 맑고 깊은 울림이 바로 무산 스님의 삶이며, 이 책이 독자에게 전하려는 본질이기도 하다.
<설악무산의 방할>은 단순한 회고집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선승의 삶을 통해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존재의 물음을 되찾고자 하는 수행의 기록이며, 동시에 삶과 죽음, 말과 침묵, 시와 수행의 경계를 넘어서는 길을 묻는 철학서다. 스님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수십 년간의 수행이 응축되어 있고, 그 말없는 가르침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다.
스님이 남긴 시와 어록, 제자들과의 인연은 무산 조오현이라는 인물을 넘어선 ‘무산정신’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창이며,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심(無心)과 방할(棒喝)의 삶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되묻게 한다.
7주기를 맞아, 스님의 가르침과 삶을 다시금 돌아보며 이 책을 펼치는 일이야말로 스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예(禮)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