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잊지 말라”…삼전도 치욕 겪은 ‘남한산성 한남루’의 마지막 주련

남한산성 한남루 <사진 황건>

보훈의 달이 끝나가는 6월의 어느 날, 남한산성을 찾았다. 여러 번 올랐던 성곽길이지만, 이날 내 발걸음을 붙잡은 곳은 성벽이 아니라 한남루(漢南樓)였다.

정조 22년(1798), 초대 광주유수 홍억(洪檍)이 한남루를 증축하면서 여덟 폭의 주련을 걸었다. 네 폭은 누각 앞기둥에, 네 폭은 안쪽 기둥에 남아 있었다.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다 보니, 마지막 두 구절 앞에서 오래 발길을 떼지 못했다.

남한산성 한남루 <사진 황건>

“縱未能復讎雪恥 猶存羞忍痛含寬” 안내문은 이렇게 풀어 놓고 있었다. “비록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지 못할지라도, 항상 그 아픔을 참고 원통한 생각을 잊지 말지어다.” 처음에는 병자호란 직후의 절규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삼전도의 치욕은 1637년이었다. 이 주련이 걸린 것은 그로부터 160여 년이 지난 정조 시대였다. 조선은 이미 국력을 어느 정도 회복했고, 문화적으로도 부흥기를 맞고 있었다. 당시 4대 유수부는 광주·개성·강화·수원이었고, 광주부는 유수부로 승격되었다.

나라가 다시 일어선 뒤에도 정조와 홍억은 그 치욕을 잊지 않았다. 그것은 복수를 독려하는 글이 아니라, 번영 속에서도 역사를 잊지 말라는 당부였다. 더욱이 마지막 구절은 ‘含冤'(함원)으로 마무리하며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을 기리자고 했다.

남한산성 한남루 <사진 황건>

주련 전체를 읽어 보면 그 뜻은 더욱 분명해진다. 성을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고, 덕 있는 정치를 펴고, 신뢰받는 장수가 나라를 이끌면, 들판에서는 목동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마지막에야 비로소 치욕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결국 이 주련이 말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이다.

나는 그 앞에서 자연스럽게 또 하나의 전쟁을 떠올렸다. 76년 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한국전쟁. 이어 중국군이 참전했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오늘도 우리는 휴전선 너머를 마주한 채 살아간다.

국가는 정권에 따라 기념하는 방식도, 보훈의 대상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의 기억까지 달라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기억해야 하고, 우리 다음 세대도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전몰장병 추모식이나 9·11 추모행사에서 자주 만나는 말이 있다. “We will never forget.” 우리는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230여 년 전 한남루의 마지막 주련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비록 원수를 갚아 부끄러움을 씻지 못할지라도…

시대는 다르지만, 국가가 후손에게 남기는 당부는 같다. 잊지 말라.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사람들을. 나라가 겪은 치욕과 아픔을. 그리고 다시는 그런 희생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느님의 법정에도, 역사의 법정에도 공소시효는 없다.

조선의 치욕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 포스터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