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가 약간 선선할 때면 나는 국방색 겉옷을 입는다. 왼편에는 의무사령부 견장을, 오른편에는 위장태극기를 벨크로로 부착한다. 견장에 사용하는 일반 태극기는 흰 바탕에 붉고 푸른 태극, 그리고 건곤감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반면 위장태극기는 전투복과 같은 국방색 계열의 고무 재질로 만들어져 있다. 전장에서는 국기조차 적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퇴근길이었다. 직속상관인 의무사령관과 처장들, 주임원사와 부관이 체력검정 연습을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나는 길가로 비켜서며 거수경례를 하고 지나갔다. 십여 발자국쯤 갔을까. 뒤에서 누군가 급히 달려와 나를 불러 세웠다. 부관이었다. “이 태극기가 혹시… 아, 아니군요. 제대로 다셨습니다.” 그는 안도한 표정을 짓고 다시 달려갔다. 달리는 중에도 내 어깨의 위장태극기가 혹시 거꾸로 부착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그 길을 걸어오며 문득 오래전에 본 영화 <The Last Castle>이 떠올랐다. 영화에서 로버트 레드포드는 군 교도소에 수감된 3성장군 어윈을 연기한다. 그는 교도소장과 갈등을 빚다가 수감자들과 함께 성조기를 둘러싼 상징적인 행동을 벌인다. 어윈 장군은 거꾸로 된 성조기를 논의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총탄을 맞으면서도 성조기를 바로 세워 올린다. 위기를 알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기가 상징하는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미군 전통에서 거꾸로 된 국기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극도의 위기와 조난을 알리는 신호다. 영화 속 인물들은 총이나 철조망보다도 국기의 의미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들에게 국기는 천 조각이 아니라 명예와 충성, 그리고 국가에 대한 봉사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마찬가지다. 군복에 태극기를 단다는 것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국가를 대표한다는 뜻이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표시다. 국기를 내 어깨에 달 수 있다는 것은 특혜(privilege)이다. 동시에 책임(responsibility)이다. 나는 군의관으로서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올가을 나는 대한핸드볼협회 의무위원 자격으로 일본 나고야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 팀닥터로 참가할 예정이다. 그때도 태극기 배지를 달게 될 것이다. 출국 전날, 아마 나는 거울 앞에 서서 태극기 배지가 바르게 달려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할 것이다. 위아래가 뒤집히지 않았는지. 삐뚤어지지는 않았는지.
그 순간만큼은 내가 개인 황건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다. 어깨 위의 작은 태극기는 가볍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