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은 흔히 불과 쇠의 역사로 기억된다. 창과 칼, 총과 포, 전차와 미사일이 전쟁사를 움직여온 듯 보인다. 그러나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또 하나의 무기를 사용해 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심장을 먼저 흔드는 무기, 바로 ‘소리’였다.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Battle of Zama)에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Scipio Africanus)는 한니발(Hannibal)의 전투 코끼리를 상대해야 했다. 고대 전장에서 코끼리는 단순한 병기가 아니었다. 거대한 체구와 굉음만으로도 적의 전열을 무너뜨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로마군은 함성과 금속성 소리, 그리고 대열 사이에 만든 통로를 이용해 코끼리의 돌진 방향을 흔들었다고 전해진다. 공포를 이용하던 무기가 오히려 혼란에 빠진 셈이다. 자마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창과 방패의 충돌만이 아니었다. 귀를 흔들어 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심리전 역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2200년 뒤, 한국전쟁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1951년 2월 지평리 전투(Battle of Chipyong-ni). 중공군은 밤마다 피리와 나팔, 호각 소리를 울리며 인해전술로 밀려들었다.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는 단순한 신호가 아니었다. 포위당했다는 공포, 끝없이 밀려온다는 압박감, 잠을 빼앗는 긴장 자체였다.
그러나 랄프 몽클라르(Ralph Monclar) 장군 휘하의 프랑스 대대는 예상 밖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일부 외인부대 출신 병사들은 착검한 채 참호 밖으로 뛰쳐나왔고, 사이렌과 함성을 울리며 맞섰다. “카메론(Camerone)!”이라는 외침도 들렸다고 한다. 멕시코 카마론 전투(Battle of Camarón)에서 끝까지 싸웠던 프랑스 외인부대의 기억이었다.
중공군은 야간의 공포 속에서 유엔군이 흔들리리라 예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공포를 받은 쪽은 오히려 공격하는 측이 되었다. 피리와 호각으로 시작된 심리전은 사이렌과 함성에 의해 되돌아왔다. 밤의 전장은 순식간에 대혼란으로 변했다.
고대의 코끼리와 현대의 병사는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공포 앞에서 귀로 먼저 흔들린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전쟁에서 소리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북과 나팔은 병사들의 발걸음을 맞추었고, 군악은 사기를 유지했으며, 함성은 상대의 심장을 먼저 압박했다. 총과 포의 시대가 되어도 인간은 이 오래된 무기를 버리지 못했다.
오늘날 DMZ의 대북확성기 역시 그런 흐름 위에 놓여 있다. 총성이 멎은 뒤에도 국경에서는 여전히 음악과 목소리가 사용된다. 때로는 긴장을 높이는 장치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마음이 여전히 소리에 흔들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현대의 심리전이기도 하다.
자마의 나팔과 지평리의 사이렌 사이에는 2200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 긴 시간 동안 무기는 변했고 전쟁의 규모도 달라졌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소리 속에서 두려워하고, 흔들리고, 때로는 용기를 얻는다.
어쩌면 인류가 가장 오래 사용해온 무기는 칼이나 총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소리’였는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