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정한책방, 2026년 4월 30일, 강주원 저)는 때로는 여행기처럼, 때로는 역사서처럼, 때로는 사회학적 보고서처럼 읽히며,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특히 ‘낯설게 보기’라는 인류학적 태도가 책 전체를 관통하며,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두만강과 압록강. 한국인에게 이 두 강은 오랫동안 ‘국경’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되어 왔다. 분단과 단절, 그리고 넘을 수 없는 경계의 상징처럼 굳어진 이미지다. 그러나 인류학자 강주원은 이 책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에서 그 익숙한 인식을 정면으로 흔든다. 저자에게 두 강은 단순한 선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건너고 돌아오며 삶을 이어온 ‘면’이며, 단절이 아니라 공존과 흐름의 공간이다.
이 책은 20여 년에 걸친 현장 연구의 결실이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 단둥을 비롯해 두만강과 압록강 일대를 꾸준히 오가며 북한 사람, 북한 화교, 조선족, 한국인 등 다양한 집단의 관계 맺음과 삶의 양상을 기록해 왔다. 그리고 그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만주와 한반도를 잇는 역사와 현재를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학술서이면서도 현장 기록의 생생함을 살린 이 책은 독자에게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경계 너머를 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온 여러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만주는 늘 춥다’는 이미지, 두만강과 압록강이 오래전부터 명확한 국경선이었다는 생각, 백두산 천지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인식 등은 실제 역사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와 현장 경험을 통해 이러한 통념들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왜 수정되어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독자는 이 과정을 통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이 책이 인물의 이동 경로를 따라 역사를 읽어낸다는 것이다. 안중근, 이회영, 김구, 윤동주, 백석 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교과서 속 영웅으로서가 아니라 ‘강을 건너는 인간’으로 다시 그려진다. 저자는 이들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넜는지, 그 선택이 이후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추적한다. “강을 건넜다”는 단순한 사실 뒤에 숨겨진 결단과 긴장, 그리고 시대적 무게가 살아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이 책이 과거의 영웅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의 시선은 현재로 이어진다. 코로나19라는 전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압록강의 물류는 멈추지 않았고, 사람들의 삶은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되었다. 국경은 닫힌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교류와 흐름이 존재했다. 단둥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은 더욱 복합적이다. 어떤 이는 북한 사람으로 태어나 북한 화교로 정체성을 바꾸고, 다시 중국인으로 살아가며, 이후 한국에 정착하기도 한다. 국적과 정체성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과 선택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는 사실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 책은 ‘경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재고하게 만든다. 우리는 흔히 국경을 선으로 이해한다. 지도 위에 그어진 분명한 경계, 넘으면 다른 세계가 시작되는 단절의 지점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강주원은 그 선이 실제 삶에서는 얼마나 유동적인지를 보여준다. 두만강과 압록강은 물리적으로는 경계일지 모르지만,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관계를 만들어 온 공간이다. 그곳에서는 단절과 연결이 동시에 존재한다.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저자의 시선은 더 넓어진다.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앞으로 우리가 이 공간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질문을 던진다. 한반도에서는 두 강이 여전히 분단의 상징으로 인식되지만, 그 이면에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공존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압전선이 강을 가로지르고, 어선이 오가며, 서로 다른 체제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이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단서다.
문체 또한 이 책의 중요한 장점이다. 학문적 내용이지만 지나치게 무겁지 않고, 현장에서 체험한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 읽는 흐름이 부드럽다. 때로는 여행기처럼, 때로는 역사서처럼, 때로는 사회학적 보고서처럼 읽히며, 독자를 지루하게 하지 않는다. 특히 ‘낯설게 보기’라는 인류학적 태도가 책 전체를 관통하며,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단순한 지역 연구서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다. 국경을 선으로 볼 것인가, 면으로 볼 것인가. 단절로 볼 것인가, 연결로 볼 것인가. 저자는 명확한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를 통해 독자가 스스로 새로운 관점을 갖도록 이끈다.
이 책을 덮고 나면, 두만강과 압록강은 더 이상 멀고 낯선 경계가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간 길이고, 지금도 누군가의 삶이 이어지고 있는 공간이며, 앞으로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장소다. 그리고 그 강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 역시 조금은 달라져 있을 것이다.
<만주와 한반도를 잇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책이다. 분단의 서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이 책은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가 진짜인가. 그리고 우리는 그 경계를 어떻게 넘어설 수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