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목요일 저녁, 예수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눈 뒤 겟세마네로 향했다. 그날 밤 그는 체포됐고, 몇 시간 뒤 새벽녘 ‘재판’을 받았으며, 이른 아침 로마 총독 앞에 서서 십자가형이 확정됐다. 단 하룻밤 사이에 체포와 심문, 판결과 집행이 이어진 이 비정상적인 속도는 단순한 종교적 사건을 넘어, 인간 사회가 어떻게 ‘폭력’을 재판의 형식으로 포장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읽힌다.
이 사건에서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만장일치 유죄’다. 유대 율법 전통에 따르면 만장일치 유죄는 오히려 무죄의 신호로 간주되었다. 재판이라면 최소한 한 사람쯤은 자비나 의문을 제기해야 하며, 그마저 없다는 것은 이미 결론이 정해졌거나 강압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의가 다수결이 아니라 공정한 절차를 통해 구현된다는 고대의 법 감각을 반영한다.
그러나 예수의 밤중 재판에서는 이 원칙이 완전히 무너졌다. 당시 산헤드린(유대 최고의회)은 정상적인 구성으로 운영되지 않았고, 예수에게 우호적이거나 신중했던 인물들은 배제된 채 회의는 이미 결론을 향해 진행됐다. 반대 의견의 부재는 정의의 결과가 아니라, 반대할 자유 자체가 봉쇄된 상황을 의미했다. 이때의 만장일치는 도덕적 합의가 아니라 정치적 순응, 혹은 강요된 충성의 표현에 가까웠다.
이러한 구조는 20세기 전체주의 정권의 재판과도 닮아 있다. 히틀러 치하의 인민재판, 스탈린 시기의 숙청 재판, 그리고 오늘날 일부 권위주의 국가의 사법 절차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음
-반대 의견이 원천적으로 금지됨
-공포 속의 만장일치
-신속한 집행
예수의 재판은 이 네 가지 요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2천 년 전의 종교 재판과 현대 전체주의 재판이 구조적으로 유사한 폭력의 양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속도’다. 예수의 재판은 체포부터 십자가형까지 약 8~10시간 내에 이루어졌다. 이는 재판이라기보다 사실상 제거 절차에 가깝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존재하지 않았고, 증거 제시는 형식에 그쳤으며, 판결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다.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사법살인(judicial murder)’ 혹은 ‘제도화된 공공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
또한 책임의 구조 역시 특징적이다. 산헤드린과 로마 총독 빌라도는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유대 지도자들은 사형 권한이 없음을 이유로 로마에 넘겼고, 빌라도는 군중의 압력을 핑계로 판결을 승인했다. 누구도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이 구조는, 권력이 분산된 형태로 폭력을 수행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이 장면은 춘추필법의 시각으로 재구성할 때 더욱 분명해진다. 사건의 본질을 드러내는 기록 방식으로 보면, 성목요일의 재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만장일치 유죄는 정의가 아니라 자유의 부재였다. 신속한 재판은 절차가 아니라 제거였다. 산헤드린과 빌라도는 책임을 전가하며 폭력의 공범이 되었다. 군중은 ‘합의’라는 이름으로 폭력에 동원되었다.
결국 성목요일의 예수를 죽인 것은 한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침묵과 방관, 책임 회피가 결합된 구조적 폭력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과거의 종교적 기억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만장일치’라는 이름 아래 이견이 배제되고, 절차보다 결과가 우선되는 순간, 유사한 폭력은 언제든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목요일을 맞아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만장일치 유죄’라는 폭력의 유혹에서 과연 자유로운가. 그 질문 앞에서, 성목요일의 재판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을 비추는 거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