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시아사회칼럼

수교도 없던 대한민국 위해 싸운 터키 1005명의 희생이 오늘 우리에게 묻는다

나는 얼마 전 전쟁기념관 3층 유엔참전실에서 한 통의 육필 편지를 읽었다. 설명에 따르면, “6·25전쟁 중 한국에 파병된 터키군 제3여단 소속 부사관 오스만 야사르 에켄(Osman Yaşar Eken)에게 그의 아버지가 보낸 답장”이었다.

“네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알라께서 너를 보호하시길 빈다. 너는 우리 가문의 자랑이다. 조국을 위해 싸우는 것은 큰 영광이다. 승리보다 네 생명이 더 중요하다. 반드시 무사히 돌아와라.” 짧은 문장들이었지만, 그 안에는 전쟁터로 아들을 보내는 모든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찾아보니 한국전쟁에서 터키군의 전사 및 실종자는 1,005명에 이르렀고, 그들을 기리는 참전 기념비가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봄, 하루 종일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주소를 맞추어 찾아갔다.

내가 대학교 1학년이던 1976년, 용인에 생긴 큰 놀이공원에 갈 때마다 무심코 지나치던 길목이었다. 그 놀이공원보다 2년 먼저 세워진 높이 14m의 탑이 그곳에 있었지만, 나는 그 존재를 이제껏 알지 못했다. 나들목을 나와 자칫 지나칠 뻔하다가 갓길에 차를 세웠다.

말라버린 국화 꽃바구니 하나가 바람에 쓰러져 있었다. 그 곁에는 소총을 들고 허리에 대검을 찬 세 명의 군인상이 서 있었다. 내가 직접 사격해 본 적이 있는 M1 소총으로 보였다. 자세는 흔히 보아온 전적비와 달랐다.

앞선 병사는 뒤를 돌아보며 왼손을 들어 “앞으로,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듯했다. 왼편의 병사는 정면에서 약간 비켜 선 채 사격 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오른편의 병사는 총을 쥔 채 후방을 향해 전진을 지시하는 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근접전이 시작되기 직전, 숨이 멎을 듯한 긴장의 순간이 그대로 멈춰 있는 듯했다.

그때 문득, 얼마 전 책에서 읽은 “개머리판 전투(Rifle-butt battle)”라는 말이 떠올랐다.

1951년 1월, UN군의 반격 작전 중 이곳 용인 김량장 전투에서 터키군 여단은 북한군과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백병전을 벌였다. 현재의 용인초등학교 인근 고지를 탈환한 뒤 전투가 끝난 현장을 살펴본 이들은 이렇게 기록했다. “중공군 사망자의 턱이 모두 골절되어 있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개머리판 전투”였다.

나는 그 기전을 알고 있다. 1983년, 3사관학교에서 군의관 훈련을 받으며 ‘총검술 16개 동작’을 익힌 적이 있기 때문이다. ‘찔러’, ‘길게 찔러’와 같은 동작들 사이에 ‘돌려쳐’가 있다. 적과의 거리가 거의 사라졌을 때, 소총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린 뒤 몸을 회전시키며 개머리판으로 상대의 턱을 가격하는 동작이다. 그 동작을 떠올리는 순간, 김량장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비로소 실감되었다.

우리나라와 터키는 1957년에야 수교했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두 나라는 외교 관계조차 없었다. 그럼에도 터키는 개전 한 달도 되지 않은 7월 18일 내각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했고, 10월 17일 1개 여단이 부산항에 도착했다.

1천명이 넘는 전사와 실종자를 남기며 ‘위기에 처한 나라를 돕는다’는 선택을 실행한 그 나라는 마침내 1952년 2월 18일 NATO에 가입했다. 창설국 12개국을 제외하면, 그리스와 함께 처음 받아들여진 나라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지만, 진심은 통한다. 나는 그날, 종교를 넘어 ‘초승달과 별’ 앞에 고개를 숙였다.

돌아나오며 쓰러져 있던 국화 꽃바구니를 다시 세워 두었다. 리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대한민국 명예영사, 에르뎀 에르쿨.”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