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칼럼

왕이 되지 말았어야 할 사람

가시나무는 자신의 그늘, 즉 자기의 수하에 들어오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자기편에 서지 않는 나무들은 척결과 청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중략) 가시나무와 같은 권력적 방법으로는 결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증오와 갈등, 억압의 악순환을 부추길 뿐입니다. <사진 가시나무 국민일보 DB>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사사기 9:14-15)

나무들이 모여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선출하려 합니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가 차례로 지목되었지만 세 나무는 모두 왕의 자리를 고사합니다.

거절의 이유는 세 나무 모두 동일했습니다. 자신이 존재하는 목적에 현재 충실하게 잘 살고 있으며 그 삶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위에 올라가 군림하는 일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사명을 이미 발견했기에 굳이 다른 나무들 위에서 권력을 쥐고 우쭐대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왕좌를 차지한 것은 ‘가시나무’였습니다. 가시나무는 자신의 그늘, 즉 자기의 수하에 들어오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철저하게 구별합니다. 그리고 자기편에 서지 않는 나무들은 척결과 청산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요담의 이 비유는 권력 구조의 속성과 실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자격 있는 사람은 손사래를 치고 오히려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이 그 자리를 탐내는 역설입니다.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사람은 욕심이 없는데 가시만 잔뜩 돋쳐 남을 찌르기만 하는 미숙한 이가 유독 권력에 욕심을 냅니다. 대개는 반드시 그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욕으로 가득한 사람이 결국 높은 자리를 차지하곤 합니다. 욕심이 없고 어질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 주변을 살피는 시야가 넓은 사람들은 주로 낮은 곳을 자처하기 때문입니다. 독선적이고 고집이 세며 타인의 희생에 무감각한 사람들이 윗자리를 차지하는 이 서글픈 아이러니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부분의 수직적 권력 구조는 다수의 성숙한 아랫사람이 소수의 미숙한 윗사람이 휘두르는 횡포를 견디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시나무와 같은 권력적 방법으로는 결코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증오와 갈등, 억압의 악순환을 부추길 뿐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을 때 그분께서 왜 홀로 산으로 피하셨겠습니까? 무소불위의 권력을 쥘 수 있었음에도 왜 기어이 십자가를 지셨을까요?

예수님은 가시나무의 왕좌에 앉아 군림하는 대신 친히 가시관을 쓰고 자신을 내어주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폭력과 강제가 아닌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만이 세상을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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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묵상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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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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