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칼럼

고양시 지축동 ‘해피밸리’…모병나팔이 울리던 계곡

해피밸리의 눈물, ‘대니 보이’가 머문 낯선 땅의 기록

요즘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한국전쟁 전적지를 찾아다닌다. 전쟁은 교과서 속 사건이 아니라, 아직 지워지지 않은 지형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지도에서 ‘해피밸리 전투 전적지’를 찾았다. 1951년 1월 3~4일, 서울 북방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의 이 계곡에서 영국군, 그중에서도 아일랜드 출신 병사들이 치열한 야간 철수전을 벌였다. 나는 그동안 영연방군의 참전, 즉 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군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아일랜드 청년들이 이 낯선 땅에서 싸웠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여러 해 전 더블린을 방문했을 때 들었던 하프 선율이 떠올랐다. 기네스 맥주 로고에 새겨진 아이리시 하프, 그리고 ‘Londonderry Air’의 애잔한 선율. 1913년 프레드릭 웨덜리가 가사를 붙인 ‘Danny Boy’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 그 ‘pipes’는 목동의 피리가 아니라 모병나팔이라고 한다. 그 나팔 소리를 듣고 젊은이들은 고향을 떠났다.

해피밸리 전적지는 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소박했다. 주차장도 없고, 비석도 없다. 빗속의 잔디밭에 안내 표지판 하나가 서 있을 뿐이다. 그곳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 소속 157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고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왕립 경기병연대의 전차는 모두 파괴되었으며, 양 연대의 지휘관이 교전 중 전사하였다.”

숫자는 간결하다. 그러나 그 157명은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아마도 “오 대니 보이”를 부르며 그들의 귀환을 기다렸을지 모른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청 앞에 서있는 추모비

1951년 7월, 이 계곡을 내려다보는 자리에 한국산 화강암 추모비가 세워졌다. 거기에는 왕립 얼스터 보병연대의 좌우명 “Quis Separabit – 누가 우리를 갈라놓을 수 있을까?”가 새겨졌다. 그 비는 1962년 북아일랜드로 옮겨졌고, 지금은 벨파스트 시청 앞에 서 있다고 한다.

왜 우리는 그 자리에 같은 비석 하나 남기지 못했을까. 왜 그들의 이름은 이 계곡에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을까.

전쟁기념관 UN실에서 본 왕립 얼스터 소총부대의 모표에는 왕관 아래 아이리시 하프가 새겨져 있었고, 그 아래에는 뿔피리가 달려 있었다. The pipes are calling. 모병나팔은 그들을 불러냈고,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기억할 수 있다. 전쟁은 각자의 조국을 위해 싸웠지만, 죽음은 이 땅에 남았다.

한국전쟁은 우리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낯선 나라의 젊은이들이 눈 덮인 계곡에서 철수 명령을 받고, 조명탄 아래에서 싸우다 쓰러졌다. 우리는 그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이름 없는 표지판만 남은 계곡이라도, 그곳이 한때 누군가의 고향과 이어져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And kneel and say an “Ave” there for me. 어제 나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다. 비는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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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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