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사회칼럼

돈을 먼저 쓸 것인가, 위기를 먼저 볼 것인가…세수 기대와 추경 정치

중동 전쟁, 유가 급등, 세수 전망 불확실

중동 전쟁 장기화와 유가 상승, 금리 인상 압력이 겹치면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추가경정예산과 국가채무 증가 논란 속에서 재정 운용의 방향을 둘러싼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AI 생성 이미지>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예상보다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대통령은 경기 활성화를 위해 다시 재정을 풀 가능성을 시사했다.

대다수 취약 부문의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어 소득 지원 정책이 불가피하다며, 취약계층과 수출기업 지원을 위한 이른바 ‘전쟁 추경’(추가경정예산안)을 신속히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방 지원도 더 확대할 수 있도록 적극 검토하라는 주문이 함께 나왔다.

결국 추경을 통해 다시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방향으로 보인다. 현재 정치권과 시장에서는 추경 규모가 약 10조~20조 원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생지원금 등 현금성 지원이 다시 추진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

작년에는 반도체 호황 등의 영향으로 세수가 크게 늘었다. 몇 년간 세수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던 재정 상황이 모처럼 숨을 돌렸고, 지난 1월 국세 수입도 52조9000억 원으로 전년보다 6조2000억 원 증가했다. 올해도 반도체 경기 호조가 이어진다면 추가 세수가 발생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일부에서는 최대 15~20조 원 수준의 초과세수 가능성도 거론된다.

아마도 이런 기대를 바탕으로 추경을 통해 민생지원 재정을 투입하겠다는 판단일 수 있다. 국가 수입이 늘면 취약계층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명분 자체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는 점 때문에 정치적 해석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추가 세수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는 전제가 흔들릴 가능성이다.

중동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세계 경제에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는 내려가고, 경기가 좋아지면 물가는 오르는 것이 정상인데, 스태그플레이션은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위험한 상황이다.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면 경기 침체가 심화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내리면 물가가 더 오르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수요가 줄어들면 생산이 감소하고 실업률이 늘어나며, 원자재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 기업 부담은 급격히 커진다.

유가 급등과 세계 경기 둔화가 현실화될 경우 반도체 경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AI와 HBM 수요가 강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글로벌 경기 둔화가 심해지면 메모리 수요가 예상보다 줄어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세수 증가 기대 역시 크게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세수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다시 국채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최근 국고채 10년물 금리는 중동 리스크 이후 상승 압력을 받고 있고, 금리가 오르면 정부의 이자 부담도 함께 늘어난다. 시장에 이미 많은 국채가 풀려 있는 상황에서 추가 발행이 이어지면 재정 부담은 더 커질 수 있다.

정부 전망 기준으로 국가채무는 이미 1300조 원 수준에 근접해 있다. 잇따른 추경으로 채무 증가 속도가 빨라졌고, 금리 상승까지 겹치면 재정 여력은 빠르게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는 추가 세수가 생기더라도 국채 상환에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많다.

그런데 추경을 통해 현금성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방향이 나온다면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 전제가 되는 세수 전망이 틀어질 경우 계획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가정에서도 미래에 들어올 돈을 미리 당겨 쓰는 일은 쉽게 하지 않는다. 세상 일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상이 빗나가면 부담은 고스란히 남는다.

일반 가정은 여유가 생기면 빚부터 갚으려 하는데, 국가 재정은 오히려 더 쓰는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정책 판단이 어려운 시기일수록 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나 역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반도체 호황이 계속되고 세수가 늘어나 재정이 안정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기대만으로 정책을 세우기에는 지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너무 불안하다.

▼ 아시아엔 후원계좌 ▼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아시아엔과 아시아 저널리즘의 발전에 크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은행 1005-601-878699 (주식회사 아자미디어앤컬처)

김진안

전 삼성전자 중동지역장 전무, 삼성SDI 마케팅실장 역임

필자의 다른 기사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본 광고는 Google 애드센스 자동 게재 광고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합니다.
Back to top but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