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안 칼럼] “희생을 연출하는 권력…이란 정부의 이중적 인도주의”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열린 미국과의 휴전 협상에 참석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른 이란의 모함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Ghalibaf) 국회의장과 아바스 아라그치(Abbas Araghchi) 외무장관 등이 포함된 고위급 대표단은, 그들이 타고 가는 비행기 전 좌석에 피 묻은 가방, 신발, 흰 꽃, 그리고 희생된 아이들의 사진을 배치했다.
이란 당국은 지난달 발생한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해 미납(Minab) 지역의 초등학교 아이들 110명을 포함해 총 168명이 희생되었다고 주장하며, 이를 ‘미납 168(Minab 168)’이라 명명하고 국제사회에 피해를 호소하는 상징으로 활용한 것이다.
TV 영상을 통해 비행기 좌석에 놓인 희생된 아이들의 피 묻은 책가방, 신발, 그리고 흰 꽃을 보며 전쟁의 잔혹함에 치를 떨었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무분별한 폭격에 대해 비난을 했다. 하지만 굳이 희생된 아이들을 이용하면서까지 이러한 피해자 퍼포먼스를 펼치는 이란 정부에 대해서는 분노가 치민다. 왜냐하면 이란 정부에게서 희생자들을 선별적으로 대하는 이중성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란 정부가 진정으로 인도주의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정권이라면, 미국과의 협상에서 희생된 아이들을 이용해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하기에 앞서 자국 내 시위 도중 보안군의 발포로 희생된 이들에 대해 먼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했다.
모두가 언론 보도를 통해 알다시피, 지난해 말 이란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이란 보안군이 시위대에 발포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2022년 ‘여성, 삶, 자유’ 시위 당시에도 최소 60~70명 이상의 미성년자를 포함해 약 500여 명이 당국의 총격이나 구타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시위에서도 어린이를 포함한 희생 사례가 보고되었다.
이란 신정 체제가 들어선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정부의 탄압과 각종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란 국민의 수는 수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대규모 희생이 이어진 상황에서 평화와 정의를 논하는 협상 자리에 ‘피 묻은 상징물’을 들고 나오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은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면서 자신들이 가한 폭력은 통치 행위로 정당화하려는 위선적인 태도로 비칠 수 있다.
이란 정부의 이중적 태도가 더욱 비판받는 이유는 죽음의 가치를 정치적으로 선별해 활용하는 데 있다. 타국에 의한 희생은 정성스러운 연출을 통해 ‘순교’로 포장하는 반면, 자국 군대에 의해 사망한 국민과 아이들의 죽음은 ‘폭도’로 규정하거나 존재 자체를 축소·부정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결국 협상장에 들고 가며 언론에 공개한 ‘피 묻은 가방’은 진심 어린 추모라기보다,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위한 상징적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희생된 아이들을 협상의 도구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이 장면은 국제적 동정보다는 이란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상징으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이 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을 정당화하거나 어느 한 편을 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협상 과정에서 희생된 아이들이 진정한 추모의 대상이 아닌 정치적 퍼포먼스로 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