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차장이 없는 공원이었다. 철망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 옆에 차를 세웠다. 3월 21일 토요일이었지만, 내가 머문 약 30분 동안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의 소리도, 사람의 발걸음도 닿지 않는 시간 속에서 나는 혼자 그 공간에 서 있었다.
그곳에는 한 인간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전차에 맞선 한 인간. 추모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거저 얻는 게 아니다.”
너무도 익숙한 문장이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는 다르게 읽혔다. 그것은 어떤 이념이나 국가의 구호가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누군가의 몸을 통해 지불된 문장처럼 느껴졌다.
처음 확인된 전사자는 98명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추가 발굴이 이루어졌고, 추모비 뒷면에는 109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리고 2026년 2월 9일 기준, 천안 전투의 최종 사망자는 129명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죽음은 그날로 끝났지만 이름은 끝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발견되고, 다시 기록되며, 비로소 그 자리에 도달한다. 이곳은 완결된 장소가 아니라, 아직도 조용히 갱신되고 있는 기억의 현장이었다.
마틴길에는 철제로 만든 평면 흉상이 서 있었다. 그 아래에는 “We go together.”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한미연합훈련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그 구호가 그날은 전혀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앞으로의 동행을 다짐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함께 갔던 이들을 뒤늦게 따라 읽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전차와 인간. 그 사이의 거리는 13.7미터였다. 그 짧은 거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기는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고, 시간은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으며, 선택지는 있었지만 결국 하나뿐이었다.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 장면을 ‘결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마도 그것은 결투라기보다 결과가 이미 기울어진 싸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때때로 그 기울어진 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하나의 주체로 세우려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이렇게 부르고 싶다. “전차에 맞선 한 인간.”
그가 쓰러진 자리에 지금은 아무도 없다. 철망 너머로는 아이들의 학교가 있고, 바람만이 그 이름들을 스쳐 지나간다.

“Freedom is not free.” 그 문장은 돌에 새겨져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처럼 느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