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미디어칼럼

칼 바르트 『로마서 강해』..말씀의 전차 위에서 인간 이성은 무너진다

칼바르트 저 <로마서>

정말 오랜만에 바르트의 책을 펼쳤다.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거대한 전차를 타고 전장을 누비는 듯한 느낌이다. 실제로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참상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예찬했던 인간 이성이 데려온 곳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지옥임을 뼈저리게 깨달은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한다. 바르트에게 제1차 세계대전은 곧 인간 이성의 실패, 특히 인간의 이성을 신뢰했던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파산 선고나 다름없었다. 사람들이 희망을 걸었던 인간의 이성, 과학, 인문학 등 인간적 가능성이라는 벽돌로 쌓아 올린 신학 체계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함께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로마서 강해』 속 바르트는 정말 무식하다는 생각이 든다. 논리가 없다. 그에게 인간은 무조건 틀렸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무조건 옳다. 이것이 그의 유일한 논리다. 그는 책에서 ‘말씀’이라는 전차에 올라타 모든 인간적 가능성을 무자비하게 압살하고 다닌다. 인간의 날카로운 이성이나 경건한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논해 보려는 방법론, 인간 내면에서 어떤 희망이라도 발견해 보려는 시도란 시도는 모조리 짓뭉개 버린다. 거의 ‘헤렘’급이다.

게다가 바르트는 확인 사살의 대가다. 나는 이것이 그의 책이 두꺼울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는 ‘인간적인 그 무언가’를 아주 철저하고 확실하게, 다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도록 사살해 버리는데, 이 과정이 병적이라고 할 만큼 집요하다. 그렇다. ‘병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는 인간의 이성이나 경건한 감정을 가지고 성서를 파헤치는 태도 자체에 거의 혐오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던 게 아닐까? 만약 바르트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았다면 목회 상담이나 상담심리 같은 분야는 위험천만하다고 주장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인간이 스스로의 내면을 아무리 헤아리고 살핀다 한들, 그곳에서 어떤 선한 것도 발견할 수 없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인간은 오직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성을 지니게 되는 존재다.

로마서 통독 3일 차다. 통독 중에 바르트는 뭐라고 말하나 궁금해서 『로마서 강해』를 잠깐 펼쳤는데, 그런데 글이… 너무 어렵다. 문장이 대체 어디서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릴 정도로 문장이 길다. 솔직히… 내 깊이가 얕고 실력이 모자라서 이해가 어려운 건데, 문장이 길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댄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내 부족한 깊이가 아니라 어렵게 써 놓은 바르트를 탓할 수 있으니. 예전엔 전혀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글이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바르트의 초장거리 문장은 무식한 독자들을 향한 깊은 배려였다.

지난 달 잠깐묵상 차례가 된 ‘로마서 9장’을 준비할 때 일이다. 그 장에선 예정론을 다루지 않을 수가 없는데, ‘인간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예정’이라는 주제는 다른 글에서 몇 차례 다루었기에 다른 주제를 찾다가 온종일 고민하며 머릿속 백지상태를 겪은 적이 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하지 않으셨나? 오늘은 안 재우실 생각이신가. 아무래도 나는 야곱 쪽이 아니라 에서 쪽인가 보다.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롬 9:13)

바르트나 읽고, 이런 글이나 끄적댈 시간에 벌써 다 쓰고 잤겠다. 그러나 이렇게 헤매는 것도 즐거운 일 아닌가. 예상한 길에서 벗어났을 때만 만날 수 있는 경치가 있다. (이 글은 필자가 SNS에 올린 글입니다)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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