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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상(賞)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바울을 오해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않고 굳이 천막 만드는 일로 먹고살 이유가 없지 않나?’ 이렇게 말입니다. 준다는 사례는 왜 안 받으며 한 영혼이라도 돌봐야 할 아까운 시간에 왜 바느질이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을까요?”_본문에서. 사진은 텐트 메이커 바울(Tentmaker Paul)’의 AI 이미지.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 9:18)

사도 바울 당시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은 교회들로부터 여러 지원을 받았습니다. 교회의 일꾼이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후원하는 일을 성도들도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같은 경우 선교 여행에 아내와 동행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돈을 벌지 않고 교회가 주는 사례금으로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모세의 율법을 근거로 제시합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신 25:4) 사도가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는 것이 율법으로 보나 상식으로 보나 자연스러운 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당연한 권리를 쓰지 않습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고전 9:18)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나에게는 상(賞)이다.’ 그의 고백입니다. 천막을 만들어 팔아 밥벌이를 하는 것이 그에게는 또 다른 권리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런 바울을 오해했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떳떳하지 못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당연한 권리를 누리지 않고 굳이 천막 만드는 일로 먹고살 이유가 없지 않나?’ 이렇게 말입니다. 준다는 사례는 왜 안 받으며 한 영혼이라도 돌봐야 할 아까운 시간에 왜 바느질이나 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을까요?

권리란 당연히 누려도 되는 것이고 마음껏 누려도 아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자기 밥그릇을 자기가 챙기지 못하면 어리석다는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권리를 챙기는 것도 능력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것을 도리어 상이라 여깁니다. 자기가 권리를 누리지 않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색을 내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복음 안에서의 자유 아닐까요?

우리가 권리에 얼마나 집착하냐면 권리를 챙기는 일은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포기하면 포기했다고 생색을 내고 나만큼 포기 못 한 사람을 보면 그게 또 못마땅합니다. 포기해도 포기가 아닌 것입니다.

권리보다 더 좋은 게 있어야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이 권리입니다. 바울에게 그것은 바로 자녀 된 권세, 곧 복음 그 자체였습니다. 사도의 권리보다 자녀 된 권세가 그에게는 더 큰 영광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권리를 포기해도 아깝지 않았고, 남이 누려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이 권리가 아니라 은혜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잠깐묵상 유튜브로 듣기
https://youtu.be/Wecz1HvX5sE?si=eVjzk4VjajeYJSgc

석문섭

베이직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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