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여류: 일상에서] 늘 한결 같고 언제나 새로운

가을 단풍 <사진 이병철>

어느새 11월도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가고 있다. 아침 안개 속 들녘 풍경이 서늘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여름의 기온이 남아 있더니, 한순간에 가을이 훌쩍 깊어진 것 같다. 벌써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도 들리니, 이제 곧 겨울로 접어들 것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기온 변화로 나무들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해, 단풍들기도 전에 잎새가 푸른빛 그대로 떨어지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이 땅도 아열대성 기후대로 바뀌었다더니, 이제 봄과 가을은 짧은 간절기처럼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는 세상이 되어가는지도 모르겠다.

이 절기의 변화를 보며 새삼 나를 돌아본다. 내 삶의 가을도 이렇게 짧아진 계절처럼 훌쩍 지나버리고, 어느새 겨울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하릴없이 늙어 가고만 있다”고 한탄하던 선배의 말이 떠오르며 깊이 공감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되풀이하며 세월 따라 늙어가다가, 어느 순간 한 생을 하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잠시 마음이 우울해진다.

지금 나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떠나야 한다’는 사실 자체라기보다, 떠나고 있음을 알면서도 여전히 어제와 다르지 않게 오늘을 살고 있다는 그 자각 때문일 것이다. 한정된 날들, 하루를 지나면 남은 하루는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 제한된 시간을 오늘도 어제처럼 무심히 보내고 있다는 그 생각이 스스로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싶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첫 기도는 틱낫한 스님의 아침 게송이다.
“이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며 나는 미소 짓네.
새로운 24시간이 내 앞에 놓여 있구나.
순간마다 충실히 살면서
모든 존재를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리라.”

스님은 ‘오늘’이라는 하루를 ‘아침에 갓 구워 배달된 빵’처럼 새롭다고 표현하셨다. 그 게송을 처음 접한 지 20여 년, 아침마다 이 노래를 기도로 삼아 하루를 열었다. 그러나 정작 그 ‘새로운 빵’을 감사와 설렘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의례적 주문처럼 반복하며 어제와 같은 하루로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오늘의 이 우울은 어쩌면 그런 무감각의 습관, 그로부터 오는 내면의 자책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런 생각 자체가 늙은이의 가을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가을 <사진 이병철>

하루의 일상을 돌아본다. 잠자리에서 깨어나 먼저 몇 가지 기도를 하고, 거실과 서재에 한 대의 향을 지핀 뒤에 정원님과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며 음악을 듣는다. 아침마다 듣는 음악은 주로 북미 인디언이나 티베트 계통의 명상음악이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나도 전생에 어딘가 그런 삶을 살았던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곤 한다.

그러나 전생이 있었는지, 그리고 다음 생이 있는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올해 도반들과의 공부 주제가 ‘죽음’이었고, 죽음의 경전이라 불리는 “사자의 서”를 함께 읽으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그럼에도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여전히 나에겐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죽음을 공부한다는 것은 다음 생을 미리 아는 일이 아니라, 오늘을 제대로 사는 법을 배우는 일임을 생각한다. 설령 윤회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번 생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면, 결국 “지금 이 생을 어떻게 사는가”가 다음 생을 위한 가장 확실한 길일 것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라는 말처럼, 날마다 새로운 오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오늘 아침의 내 우울은, 아마도 내가 맞이하는 모든 오늘이 언제나 새로움으로 충만한 날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날이 새로운 날이라면,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복처럼 보이는 오늘의 삶도 분명 어제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자각-그 깨어 있음이 오늘을 새롭게 사는 첫걸음일 것이 싶다.

가을 <사진 이병철>

반복이야말로 새로움의 모태다. 반복 속에서만 미세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고, 그 차이가 생의 리듬을 만든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지 않듯, 똑같은 기도와 숨, 똑같은 햇살 속에서도 새로운 생이 날마다 태어난다.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일상의 반복은 곧 깨달음의 길이 될 수 있으리라 싶다.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해야만 새로운 하루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하루하루가 온전히 새로운 것이며, 그 위에 나는 매일 처음으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굳이 무엇을 성취하려 애쓰지 않더라도 오늘을 감사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행위로 인해 기쁨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가 이미 기쁨일 수는 없는가.

지금 이렇게 숨 쉬며 오늘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맙고 놀라운 일인가.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신비이고 기적이며 축복이라는 말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무엇을 이루려 하지 말라”던 스승의 말씀이 떠오른다. 이루려는 마음이 사라질 때, 존재는 비로소 그 자체로 완전해진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잠시 빠졌던 상념에서 벗어나 하늘을 본다. 오늘 하늘빛도 완연한 가을이다. 더없이 깊고 푸르다. 이제는 짧아진 가을을 아쉬워하기보다, 단풍들지 못한 채 떨어지는 잎새에도 깊은 눈길을 주어야겠다.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오늘도 고맙고 눈부신 날이다.

가을 단풍 <사진 이병철>

이병철

시인, 생명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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