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의 초등학교 동창생 중 건설회사 임원을 역임한 옛 친구가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으로 5년 이상 투병하고 있다. 또한 80세까지 대학교 초빙교수로 후학들을 지도한 지인이 최근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치료 중이다. 파킨슨병은 인구 1천 명에 1명꼴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주로 노인에게 발병하고 나이가 들수록 이 병에 걸릴 가능성이 커진다.
파킨슨병은 전 세계에서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신경 퇴행성 질환이다. 향후 20년 내에 환자가 2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에서도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 다음으로 흔한 신경계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2024년 파킨슨병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14만3441명으로, 최근 10년간 약 50% 급증했다. 성별 환자 비율은 여성이 56%로 남성보다 많으며, 연령별로는 65세 이상이 93%를 차지했다.
파킨슨병은 19세기 말에 처음 보고한 영국인 의사 제임스 파킨슨(James Parkinson)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다. 파킨슨병을 확진할 수 있는 검사는 따로 없으므로 전문의의 진찰과 면담이 가장 중요한 진단법이다. 환자의 자세, 보행, 근육 긴장도, 손동작 등을 직접 관찰하고 병의 경과와 증상을 세심히 듣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가 도출된다. 뇌자기공명영상(Brain MRI), 도파민 전달체 핵의학 검사(PET), 인지기능검사 등이 진단에 도움이 된다.
파킨슨병은 뇌 부위 중 중뇌의 흑색질(substantia nigra)에서 도파민(dopamine) 신경세포가 점차 소실되어 도파민이 부족해지면서 나타난다. 도파민은 뇌의 신경세포에서 만들어지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로, 신체의 운동기능을 조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에 도파민 세포가 소실되면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운동기능이 떨어진다. 파킨슨병은 활동력을 떨어뜨리고 자세 변형을 유발해 고개가 앞으로 쏠리고 어깨와 등이 둥글게 구부러진다.
파킨슨병의 ‘사촌’으로 불리는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이나 ‘이차성 파킨슨증’은 파킨슨병과 구별해야 한다.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Atypical Parkinsonism)의 원인은 다양한 뇌 부위의 퇴행성 변화이며, 진행성 핵상 마비(PSP), 다계통 위축증(MSA), 피질기저변성(CBD), 루이소체 치매(DLB) 등의 증상을 보인다. 이차성 파킨슨증은 약물 유발성 파킨슨증, 혈관성 파킨슨증, 정상압 뇌수두증, 뇌종양, 독성 물질 등으로 인해 부차적으로 발생한다.
파킨슨병과 닮은 질환을 구별하는 일은 어렵고 복잡하지만, 이는 환자와 가족의 미래를 위한 나침반이기도 하다. 빠르고 정확한 감별은 적절한 치료의 시작이며, 예후를 가늠하고 삶의 질을 최적화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진짜 파킨슨병인지, 닮은 질환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심도 깊은 대화와 함께 전문적인 진찰이 필요하다.
질환마다 예후와 치료법이 다르기 때문에 정확한 진단이 필수적이지만, 초기에는 증상이 유사해 감별 진단이 어렵다. 특히 유병률이 낮은 질환의 경우 수집할 수 있는 영상 데이터가 부족해 기존 AI 기반 기술로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 이에 부산대 정보컴퓨터공학부와 부산대병원 뇌신경센터는 적은 데이터로도 높은 정확도를 보이는 인공지능(AI) 기반 비정형 파킨슨 증후군 진단 기술을 개발했으며, 최대 94%의 진단 정확도를 기록했다.
파킨슨병의 4대 증상은 진전(떨림), 강직(경직), 서동(운동 완만), 자세 불안 등이지만 환자들이 가질 수 있는 증상은 훨씬 다양하다. ‘진전’은 주로 환자가 쉬고 있을 때 나타나며, 자발적인 운동을 하는 동안에는 떨림이 감소하고 안정 시 진전의 양상을 보인다. 손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나며, 환약을 뭉치는 듯한 동작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서동’은 몸의 움직임이 느려지는 것을 말하며, 보폭이 작아지고 발이 지면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아 발을 끌면서 걷거나 간헐적으로 운동 정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얼굴표정이 감소해 감정 표현이 줄고, 약하거나 불분명한 어투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강직’은 근육과 관절이 굳어지는 것으로, 검사자가 환자의 관절을 움직여 보면 뻣뻣하고 유연성이 부족함을 느낀다. ‘자세 불안’은 서 있는 동안에도 구부린 자세를 취하는 등 몸 전체가 굽는 자세 변화가 생긴다. 자세 불안 증상이 있으면 균형을 잡지 못해 쉽게 넘어져 다치기도 한다.
운동기능과 관련되지 않은 비운동 증상으로는 ▲후각 감퇴, 신체 통증 등 감각장애 ▲경도인지장애, 치매 등 인지기능장애 ▲렘수면행동장애(RBD), 주간 졸림, 불면증 등 수면장애 ▲우울, 불안, 환각, 망상, 충동 조절장애 등 신경정신 증상 ▲변비, 소변장애, 기립성 저혈압, 성기능 장애 등 자율신경계 증상이 있다.
파킨슨병의 발병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신체 노화·환경적 요인·유전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완치법이 없는 파킨슨병은 발병 초기 정확한 진단을 기초로 약물 치료를 비롯해 수술, 재활 등을 병합한 치료를 적용해야 병의 진행을 늦추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
많은 파킨슨병 환자들이 고령으로 다양한 만성질환을 동반하기 때문에 초기에 파킨슨병을 의심하지 못하고 1·2차 의료기관 이용 후 3차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최근 가천대학교 길병원에서 문을 연 ‘파킨슨센터’는 신경과·신경외과를 주축으로 다학제 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핵의학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등 의료진이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는다.
파킨슨병에서 약물치료의 목표는 병을 완치하거나 진행을 막을 수는 없지만 증상을 개선해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있다. 치료의 기본 원칙은 환자별 맞춤 치료다. 동일한 질병이라도 나이, 직업, 증상 정도에 따라 장·단기적 치료 전략이 달라질 수 있다. 주요 치료 약물에는 레보도파, 도파민 효현제, 모노아민산화효소 억제제, 아만타딘 등이 있다.
수술적 치료는 오랜 약물 복용으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 도파민계 약물 부작용으로 이상운동증이 조절되지 않을 때, 또는 심한 ‘온-오프(on-off)’ 변동이 나타날 때 선택할 수 있다. 신경 파괴술과 뇌심부 자극술이 대표적이며, 뇌심부 자극술(Deep Brain Stimulation)은 미세한 전극으로 뇌 깊은 부위의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치료다. 수술 여부는 연령, 증세, 동반 질환 등을 고려해 결정한다.
운동치료는 진행성 장애와 관계없이 가능한 기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적절한 운동은 기분과 수면에도 도움을 준다. 운동은 가능하면 매일, 하루 20분 이상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의 종류에는 달리기, 수영, 물속 걷기, 고정식 자전거 타기 등이 있다. 이러한 운동은 구부정한 자세를 교정하고 근력을 강화해 이동성과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파킨슨병은 서서히 진행하는 병이지만, 신경과 전문의가 병세에 맞는 적절한 약물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환자는 약간의 불편은 있더라도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파킨슨병에 특별히 좋은 음식이나 나쁜 음식은 없다. 식사를 제때 하고 담당의사 지시에 따라 꾸준히 약을 복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