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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수제자 최재천 “자연으로 돌아간 침팬지의 벗, 제인 구달 스승님”

2017년 8월 10일 오후 3시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AJA 에코 토크’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제인 구달 박사(오른쪽)와 최재천 교수

세계적인 침팬지 학자이자 환경운동가 제인 구달 박사가 2025년 10월 1일 91세로 별세했습니다. 인류와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한 그의 업적은 과학을 넘어 윤리와 생명 존중의 영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2017년 여름 제인 구달 박사의 방한을 앞두고 제자 최재천 교수가 <아시아엔>에 쓴 기고문으로, 스승에 대한 존경과 애정이 깃든 회고의 글입니다. 생명의 스승 제인 구달 박사를 추모하며 다시 게재합니다. <편집자>

[아시아엔=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장 역임] 세계적인 침팬지 학자이자 환경 및 동물권 운동가 제인 구달은 1934년 4월 3일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과 아프리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가졌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저명한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를 만나 침팬지 연구를 제안받았다. 그리고 1960년 7월 14일, 26세의 젊은 나이에 탄자니아 탕가니카 호수 인근 곰베에 첫발을 내디디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야생 영장류 연구 ‘곰베의 야생 침팬지 연구’를 시작했다.

당시 과학계는 침팬지의 행동이나 사회적 특성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구달은 직접 침팬지 사회에 들어가 그들의 일원이 되어 관찰하는 전례 없는 연구 방식을 시도했다. 그는 침팬지에게 번호 대신 이름을 붙여 관찰하며, 동물도 감정과 개성을 지닌 존재임을 밝힌 혁신적 연구를 이어갔다. 이 연구를 통해 도구 사용, 문화 전수, 사회 관계 등 인류학의 경계를 뒤흔드는 발견들을 이끌어냈다. 침팬지의 도구 사용 사실이 확인되자 리키는 이렇게 말했다.

침팬지와 제인 구달

“이제 우리는 도구를 재정의하거나, 인간을 재정의하거나,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977년 구달은 ‘제인 구달 연구소’를 설립해 침팬지 보전과 자연 보호 활동에 헌신했다. 1991년 탄자니아의 지역 주민들과 함께 시작한 작은 숲 보전 모임은 현재 전 세계 140여 개국, 8000여 개 그룹이 활동하는 글로벌 환경운동 네트워크 ‘뿌리와 새싹’(Roots & Shoots)으로 성장했다. 이 운동은 청소년들이 지역사회와 자연, 동물의 복지를 위해 스스로 실천하는 독창적인 환경운동으로 발전했으며, 한국에도 수십 개의 그룹이, 북한에도 두 개의 모임이 활동 중이다.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구달은 해마다 300일 이상 전 세계를 돌며 지구와 생명을 위한 메시지를 전했다. 2002년에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유엔 평화의 대사’로 임명되었고, 2013년에는 필자와 함께 ‘생명다양성재단’을 설립해 생명 사랑의 정신을 전파했다.

재단의 첫 번째 사업은 서울대공원 돌고래 ‘제돌이’를 제주 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이었다. 이후 방류된 다섯 마리의 돌고래는 자연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으며, 특히 삼팔이와 춘삼이는 세계 최초로 야생에서 새끼를 낳아 가족을 꾸린 사례로 기록되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한국 내 ‘뿌리와 새싹’의 중심 역할을 맡아 구달 박사의 방한 일정과 활동을 지원해왔다.

새로운 연구의 길을 개척하고 평생을 환경보호와 생명 존중에 헌신한 제인 구달 박사는 인류가 자연과 공존하는 길을 제시한 스승이었다. 그의 발자취는 여전히 숲속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침팬지의 울음소리처럼 우리에게 생명의 존엄을 일깨워주고 있다.

2017년 8월 12일 만해대상(실천부문)을 수상한 제인 구달이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온 에디 스푸랍토 아시아기자협회 부회장과 포즈를 취했다. 에디 부회장은 인도네시아 자연림 서식 동식물 취재와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강원도 인제군 내린천센터에서 <사진 이상기>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국립생태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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