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

[발행인 칼럼] 군산 매매춘업소 20대여성 5명 화재참사 25년 그후…성매매에서 디지털 착취까지

군산 사고 10일 전 한 피해자의 일기 <사진 송인걸 한겨레 기자>

“자꾸 외롭고 슬퍼지는 이유가 뭘까?…두렵다. 일이 두려워진다. 난 아프기 싫은데 자주 아프니까 싫다. 나! 나좀 도와주세요. 제대로 인간답게 사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요. 이 정도면 옛날에 죄값은 다 치른 것 같은데 제 생각만 그런가요. 이제 그만 용서해주시고 저좀 도와주세요.”(한 피해자가 사고 이틀 전 쓴 일기 일부)

2000년 9월 19일 아침 9시 조금 지난 시각, 군산 대명동의 한 불법 매매춘 업소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불길은 20분 만에 잡혔지만, 쇠창살과 밖에서 열게 돼있는 잠금장치에 갇혀 있던 젊은 여성 다섯 명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들은 20대 초반, 대부분 빚에 쫓겨 업주에게 팔려온 여성들이었다. 그들의 일기장엔 폭력과 감금, 업주의 착취 속에서 “자유가 그립다”는 절규가 남아 있었다. 그들 중 2명은 영정사진과 유족 없이 장례절차를 마쳐야 했다.

피해자들은 저 쇠창살에 갇혀 화염에 발버둥치다 생을 마감해야 했다.

사건 직후 경찰은 소극적 수사로 일관했고, “증거도 증인도 없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한겨레신문 박임근 송인걸 두 기자의 끈질긴 보도로 진실은 하나둘 밝혀졌다. 건물은 환기구와 비상구조차 없는 불법 개조 건물이었고, 업주와 경찰 간 유착 의혹은 수사 과정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대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했고, 이 사건은 2004년 성매매방지 및 피해자보호 특별법 제정의 계기가 되었다.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 피해자가 친구에서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

그러나 25년이 지난 지금, 무엇이 달라졌을까. 2014년 충북 보은 유흥주점 화재, 2016년 청주 모텔 사건 등에서 또다시 여성들이 좁은 공간에 갇혀 목숨을 잃었다. 2020년대에도 ‘조건만남’을 빌미로 한 인신매매,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착취, 불법 촬영물 유통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름과 방식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보이지 않는 쇠창살 속에 살아가고 있다.

한 피해자가 사고 이틀 전 쓴 일기.

더 큰 문제는 사회의 무관심이다. 당시 화재 현장 인근에는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지만, 그저 형식일 뿐이었다. 지금도 성매매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고, 제도적 지원은 미흡하다. 보호시설은 턱없이 부족하고, 직업 훈련이나 자립 지원은 실효성이 떨어진다.

“그녀들이 왜 탈출하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은 결국 “국가와 사회가 왜 그들을 외면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군산 대명동 피해자가 쓴 장부. 전체 수입의 절반은 착취 당하는 식이었다.

군산 참사 25주기, 사건 발생 닷새 후 한밤 중 찾은 현장 2층엔, 피해자들이 감금된 채 죽음을 맞은 현장에 소방차가 뿌린 방화수에 이부자리가 흥건히 젖어있고, 서랍 안에 온갖 종류의 약들이 그대로 있었다. 거세게 몰려오는 불길을 피하지 못한 채 몸부리치던 20대 여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쇠창살 없는 창, 잠기지 않은 출입문, 억눌리지 않는 목소리. 그것이야말로 군산에서 희생된 다섯 여성에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소한의 답변일 것이다. 이제 다시 질문 하나 던진다. 과연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 피해자의 사고 3개월 전 일기
군산 대명동 화재사건 경찰 수사자료 <한겨레 송인걸 기자>

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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