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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⑨] 끝나지 않은 회심과 고백, 그리고 은총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의 ‘서재에 있는 성 아우구스티누스(St. Augustine in His Study)’. 1480년경 작품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단순한 자서전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신앙을 탐구한 영적 대서사시입니다. 어린 시절의 회상에서 시작해 청년기의 방황, 마니교와 철학의 영향, 그리고 회심과 세례, 어머니 모니카와의 이별을 거쳐, 마지막에는 시간과 창조, 삼위일체의 신비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시리즈는 그의 삶과 사상을 따라가며, 인간의 연약함과 은총의 깊이를 동시에 보여줄 것입니다. <편집자>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제1권부터 제9권까지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죄와 방황, 회심과 세례의 과정을 기록했다. 그러나 제10권에서는 방향을 바꿔, 이미 회심한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고, 신앙 안에서 내적 성찰을 깊이 이어간다. 이 권은 그의 철학적·신학적 사유가 집약된 부분으로, 특히 기억(memoria)에 대한 분석은 서양 사상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현재를 고백하다…기억과 자기 성찰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선 자신의 현재 상태를 하느님 앞에 고백한다. 그는 이미 세례를 받아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히포에서 주교로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죄와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한다. 그는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교만과 탐욕의 흔적을 본다. 주님, 저를 살펴주소서”라고 기도한다.

그의 고백은 단순한 과거의 죄 회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혜가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신앙을 단번에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평생에 걸친 여정으로 이해했다.

기억의 신비

이 권의 중심 주제는 기억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을 “광대한 궁전”으로 묘사하며, 그 안에 감각적 경험, 지식, 감정, 상상 등이 저장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기억의 무한한 능력 앞에서 경이로움을 느끼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이런 능력을 주신 것에 감사한다.

그는 기억을 단순한 ‘정보 저장고’로 보지 않았다. 기억은 인간이 자신을 인식하고, 하느님을 찾는 길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나는 내 기억 속에서 나를 발견한다. 그러나 내 기억을 넘어서는 분, 곧 주님을 거기서 찾는다”고 고백한다.

특히 그는 기억 속에서 죄의 흔적과 유혹도 여전히 살아 있음을 인정한다. 과거의 잘못된 쾌락과 욕망이 기억을 통해 다시 떠오르며, 그것이 현재의 신앙을 위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기억을 성찰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하느님의 은총을 간구한다.

죄와 유혹에 대한 성찰

아우구스티누스는 기억을 성찰하면서 자신이 여전히 죄의 유혹 앞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음식, 성적 욕망, 명예욕, 호기심 등 여러 차원의 유혹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자신이 얼마나 쉽게 미혹될 수 있는지를 고백한다.

예컨대 그는 식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전히 배고픔보다 맛을 더 즐기려는 유혹에 흔들린다.” 성적 욕망에 대해서도, 결혼과 독신 사이의 갈등을 여전히 경험한다고 고백한다. 명예욕은 더 은밀한 유혹이었다. 그는 “나는 사람들의 칭찬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들으면 여전히 기쁘다”고 인정한다.

그의 고백은 성직자나 신학자의 이상적 자화상이 아니라, 현실의 인간으로서 끊임없이 유혹과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로 이 점에서 <고백록>은 시대를 넘어 많은 독자에게 공감을 준다.

하느님을 향한 갈망

기억과 유혹의 성찰 속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점점 더 깊은 고백으로 나아간다. 그는 하느님을 “나의 참된 기쁨, 나의 안식”으로 부르며, 인간의 욕망과 쾌락이 줄 수 없는 평화를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늦었지만, 이제는 당신만이 나의 기쁨이요, 나의 구원입니다. 내가 당신을 찾는 것은 기억 속에서가 아니라, 당신이 나를 붙드셨기 때문입니다.”

자기 성찰의 의미

제10권은 단순한 철학적 논문이 아니다. 그것은 기도로 쓰인 신학적 성찰이며, 하느님과의 대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그것을 하느님 앞에 바친다. 그는 인간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한다.

이 자기 성찰은 훗날 서양 기독교 전통에서 양심 성찰과 내적 기도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또한 현대 심리학적 ‘자기 탐구’ 개념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고백록> 제10권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내적 여정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그는 회심과 세례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유혹과 싸우며 하느님의 은총을 갈망한다. 특히 기억에 대한 성찰은 인간 내면의 신비를 드러내며, 인간 존재가 단순히 과거의 누적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그는 이 권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당신만이 저의 힘과 안식처입니다. 제 안에 있는 모든 기억과 갈망을 당신께 올려드립니다.”

윤재석

'조국 근대화의 주역들' 저자, 傳奇叟(이야기꾼), '국민일보' 논설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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