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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칼럼] 내가 추구한 길 위에서 만난 스승들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직무대리로 검찰청에 잠시 근무할 때였다. 고교 선배인 변호사가 찾아왔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검찰청 앞 화단으로 나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침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서 검사실로 들어서는 피의자의 수갑을 풀어준 적이 있어? 그리고 그에게 자판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개비 권한 적이 있어?” 그 한마디가 나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들의 죄만 보았다. 그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쓴 인권운동가였다.(본문에서)

나는 요즘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과거를 되새김하며 ‘내가 누구였지? 내가 진정으로 추구했던 게 뭐였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어머니의 기대였다. 어머니는 동네 의원이나 법률 사무소를 보면 그 앞에서 합장을 하면서 아들이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빌었다. 한 사건이 선택의 계기였다.

까까머리 검정 교복의 중학생일 때였다. 어느 날 속칭 일진이라는 아이의 칼에 맞았다. 내가 미웠던 것 같다. 그 아이는 재벌의 아들이었다. 나는 무기 정학을 당했다. 이상했다. 피해자도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돈이 사건을 왜곡시킨 것 같았다. 그 사건은 나의 영혼을 조금 깨운 것 같았다. 고등학교 시절 카바이트 불을 밝히며 책을 팔던 청계천의 리어카 책 장사의 좌판을 돌아다니면서 몇몇 사회과학 서적을 사서 읽었다. 링컨은 흑인 노예를 해방하면서 미래의 미국은 더욱 심한 계급이 형성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차별은 흑인 노예 시절보다 더 참혹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서적은 재벌과 평민의 차이는 현대의 카스트 제도라고도 했다.

나는 어렴풋이 이 사회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의대가 아니라 정의를 지향하는 법대를 지망하게 됐다.

대학 4학년 말에 나는 눈이 두껍게 덮인 가야산 자락의 한 암자에서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옆방에 수배 중인 남자가 숨어들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저항하다 도망을 다니는 중이라고 했다. 서울대를 다니던 그는 이 땅의 민주화에 인생을 건 것 같았다. 나는 박정희 독재정권의 상징물인 유신 헌법책을 달달 외우고 있을 때 그는 옆방에서 프랑스 혁명사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삶의 개천에서 빠져나와야겠다는 말로 나를 합리화했었다.

고시에 합격하고 검사 직무대리로 검찰청에 잠시 근무할 때였다. 고교 선배인 변호사가 찾아왔었다. 그가 나를 데리고 검찰청 앞 화단으로 나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아침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서 검사실로 들어서는 피의자의 수갑을 풀어준 적이 있어? 그리고 그에게 자판기에서 나오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이나 담배 한 개비 권한 적이 있어?”

그 한마디가 나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나는 그들의 죄만 보았다. 그 선배는 『전태일 평전』을 쓴 인권운동가였다.

나는 변호사가 됐다. 냉기 섞인 바람이 불던 봄날 구치소에서 30년 징역 생활을 하고 있던 죄수를 만났다. 그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법 1조를 보면 변호사는 인권 옹호와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한다고 되어 있는데 그 사회 정의라는 게 구체적으로 뭡니까?”

그는 스스로 이렇게 답을 알려주었다.

“저는 엄청난 고문을 받았습니다. 제 옆방에 있는 죄수는 맞아 죽었습니다. 이런 불법을 세상에 폭로해 주는 게 변호사의 사회 정의 아닌가요?”

처절한 고통을 받은 사람은 정의에 민감했다.

그 후 우연히 청부 살인범 사건을 맡은 적이 있었다. 판사 사위의 불륜을 의심한 재벌 사모님이 사위와 사귀는 것으로 오인한 여대생을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느 날 청부 살인범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사모님이 내게 제의를 했어요. 살인 청부는 없었고 내가 미행하다가 실수로 죽인 걸로 하자네요. 그러면 사모님은 무죄고 저는 과실치사로 가벼운 형을 받는답니다. 말을 맞추어 주면 50억 원을 주겠다고 합니다. 협조해 주시면 변호사님에게도 큰돈을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내부 고발자가 됐다. 그 결과는 좀 아팠다. 그들은 나를 향해 다섯 건의 민·형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런 사건이나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내가 형성되고 성장한 것 같다. 그것이 사상이든 책이든, 만남은 곧 눈뜸이기도 했다. 그런 만남들은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했다.

‘순간순간 이 일이 인간의 삶인가. 나답게 살고 있는 것인가.’

내가 부딪힌 그런 체험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도 돈이나 지위만을 중하게 여기고 영원히 살 것 같이 착각하는 꿈꾸는 노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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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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