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삼백리 낙동강의 절경, 안동 고산정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필자가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던 2019~2023년, 예비 명승 100곳을 준비해 놓았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인 안동시 도산면 낙동강변의 고산정이 국가유산청에 의해 국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윤주 위원을 통해 전해 들었다. 감개가 무량하다.
2001년, 천삼백리 낙동강을 하염없이 따라 걷다 만난 가송협의 고산정은 태백에서부터 걸어와 지친 내 정신을 새롭게 일깨운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그 뒤 수없이 찾아갔고, 한 번은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차 온 배우 이병헌을 만나기도 했다. 고산정은 퇴계 이황의 제자 금난수(1530∼1599)가 지은 정자다.

퇴계는 도산서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산 전체가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청량산을 자주 오갔다. 청량산에는 퇴계가 ‘나의 산’이라는 뜻의 오산당(吾山堂)을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는데, 진성이씨 종중산이었기 때문이다. 오백여 년 전 퇴계가 도산서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청량산을 오르내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퇴계는 제자 금난수의 집을 찾은 일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길이 몹시 험했는데 갈 때는 말고삐를 잡고 조심했으나, 돌아올 때는 술에 취해 그 험한 길을 잊고 탄탄대로처럼 걸었다.” 마음을 다스림의 중요성을 전하는 말이다. 제자 학봉 김성일은 이를 두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고 했다.

안동 도산면 낙동강변에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산정을 지었던 금난수와, 그 집을 찾던 퇴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 스승과 제자는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세상사는 오고 가는 것이 이치요, 마음이 변하는 것 또한 이치다.
봉화를 지나 도산면에 들어섰을 때, 나는 숨이 멎을 듯한 풍경에 발길을 멈췄다. 풀을 뜯는 흑염소 너머 펼쳐진 절경이 내 영혼을 사로잡았다. 괴테의 <파우스트> 속 “멈추어라, 순간이여, 너 정말 아름답구나”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사흘간 이어진 고된 여정을 잊게 할 만큼 낙동강 가송협의 풍광은 아름다웠다.
멀리서 바라보는 가송협 일대 낙동강은 어느 경치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 다비드 르 브르통은 <걷기 예찬>에서 “아름다움은 민주적인 것이기에 만인에게 주어진다”고 했으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는 많지 않다.

강 건너 깎아지른 듯한 절벽 아래 자리한 고산정은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지은 정자다. 그는 명종 19년(1564) 예안에 성재정을 지어 학문에 힘쓰다, 가송협에 고산정을 짓고 ‘일등정자’라 불렀다.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가운데 우물마루와 양쪽 온돌방을 갖췄다.
이곳은 안동팔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며, 퇴계를 비롯해 수많은 선비들이 찾던 명승지다. 지금도 정자에는 퇴계와 금난수의 시가 남아 있다. 금난수는 봉화 출신으로, 호는 성재이며 고산주인으로 불렸다. 그는 퇴계에게 <심경>을 배우며 도산서당 건립에 기여했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산정의 경치는 뛰어나 <미스터 선샤인> 촬영지로 쓰였고, ‘우리 땅 걷기 도반’들도 이곳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낙동강 10경 중 하나로 손색없는 이곳은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맞은편에는 물맛 좋은 옹달샘이 남아 있다.
퇴계는 제자 금난수를 아꼈기에 청량산 가는 길에 고산정을 자주 찾아 경치를 즐겼다. <서고산벽>, <유고산>, <고산견금문원> 같은 시편이 고산정에서 지어졌으며, 지금도 <서고산벽>은 전해진다.
강 건너 가사리 남쪽 산에는 부인당이라는 신당이 있다. 고려 공민왕의 딸이 피란길에 세상을 떠나 신격화된 곳으로, 지금도 마을 제사가 이어진다.
2006년 환경부의 ‘천리길 프로젝트’에서는 퇴계가 도산서당과 청량산을 오가던 길을 ‘퇴계 오솔길’로 이름 붙였다. 낙동강을 따라 이 길을 걷다 보면 이현보 유적, 이육사 문학관, 도산서원으로 이어지며, 길은 여전히 “어서 오라” 손짓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