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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섭의 고려인 청소년②] 급식 준비하는 ‘까마귀’가 되었다

20kg짜리 쌀이 2주 만에 바닥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기뻤다. “더 먹어!” 하며 권하고, 입 안 가득 밥알을 넣는 아이들의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주 5일 수업에 고기가 매일 나온다. 그중에서도 김치제육볶음과 김치찌개는 단연 인기 메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대부분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식사 전, “오늘도 맛있는 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운다.-본문에서

점심시간이 되자 삼삼오오 밖으로 나가는 고려인 청소년들. 그 중 블라드와 다브론에게 “나도 같이 가자”고 하며 평택대학교 후문 쪽으로 함께 나섰다. 중도입국 청소년 진로를 고민하던 중이었고, 마침 블라드와 다브론은 고려인 중도입국 청소년으로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기에, 점심을 사주고 싶었다. “뭐 먹을래?”라고 물으니, 그들은 주저 없이 “삼각김밥이요”라고 답했다. 내가 사주는 줄 모르고 평소 먹는 것을 당연하게 말한 것이다.

나는 물었다. “왜 하필 삼각김밥이야?” 그러자 아이들은 하루에 천 원씩 용돈 받아 삼각김밥 말고는 먹을 수 없다고 했다. 순간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늘에는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점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창 먹어야 할 나이에 삼각김밥이라니….’ 나는 그 순간 이들에게 손바닥만 한 구름, 볼품없는 로뎀나무 그늘, 고기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이기도 하다.

2019년 8월 5일,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개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사명으로 여기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무조건 점심 한 끼는 잘 먹이자는 것이다. 고려인 가정의 대부분은 한국 사회에서 하위 노동계층으로 분류되며, 소득도 높지 않다. 일부는 본국에 송금까지 하며, 남은 돈으로는 원룸이나 투룸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들에게 한국은 조부모 세대의 기억과 흔적이 묻어 있는 ‘할아버지의 나라’이며, 동시에 코리아 드림을 품고 살아가는 현재의 삶이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잔업과 야근을 반복하며 아이들과 식탁을 함께하는 일은 사치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고, 조부모의 개척 정신을 이어 살아내고 있다. 그렇기에 더더욱 아이들에게 따뜻한 식사 한 끼는 부모의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여건은 넉넉하지 않았고, 결국 아이들은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워야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에게 작은 구름, 볼품없는 로뎀나무, 그리고 까마귀가 되어야 했다. 엘리야에게 고기를 물어다 주었던 그 까마귀처럼.

급식을 준비하려면 아내의 도움이 절실했다. 특히 비용 문제는 전적으로 그녀의 몫이었다.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며 고려인 청소년들의 사정을 설명하고, 지원을 구해야 했지만 나는 그런 대외 활동에 약했다. 그리고 시간도 없었다. 그러나 아내에게는 사정을 설명할 수 있었고, 그녀는 나를 ‘철면피’로 여기지 않았다. 사정을 들은 아내는 기꺼이 식단을 짜고, 재료를 구하고, 아침마다 정성껏 준비해 주었다. 초등학교 교사로 출근 전에 급식을 만들어 놓으면, 나와 딸 한나는 점심시간 전 밥을 짓고 음식을 데워 아이들에게 제공했다.

2019년 8월 5일,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가 개교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사명으로 여기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그 첫 번째는 무조건 점심 한 끼는 잘 먹이자는 것이다.(본문에서)

8월 개교라 가장 힘든 급식도 역시 8월이었다. 우리 학교는 샌드위치 판넬 구조의 경량 조립식 건물로, 여름이면 실내 온도가 40도를 넘는 날이 다반사다. 겨울에는 반대로 뼛속까지 춥다. 평택항에서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평택평야를 지나 학교를 때린다. 다행히 1층은 천장이 높아 여름엔 비교적 시원하다. 아이들은 1층에서 급식을 받아 시원하게 먹는다. 하지만 조리실 안의 나는, 그리고 한나는 땀범벅이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데우고, 튀기고, 다시 데워 아이들 식판을 채웠다. 사모는 매일 다른 메뉴를 고민하며 레시피를 만들고, 땀으로 샤워를 하듯 아침을 맞이했다. 그렇게 우리 세 사람은 매일 까마귀의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20kg짜리 쌀이 2주 만에 바닥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기뻤다. “더 먹어!” 하며 권하고, 입 안 가득 밥알을 넣는 아이들의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 주 5일 수업에 고기가 매일 나온다. 그중에서도 김치제육볶음과 김치찌개는 단연 인기 메뉴다. 역시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대부분 김치가 들어간 음식을 좋아한다. 식사 전, “오늘도 맛있는 음식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 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운다. 아이들의 얼굴에 살이 오르고, 밝은 표정이 살아날 때마다 나는 내일도 다시 기대하게 된다.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 2층으로 먼저 올라와 오늘의 메뉴를 확인한다. 기대했던 메뉴가 나오면 “예스~!” 하고 외친다. 그렇게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자 까마귀가 된 나는, 이제 이 아이들에게 또 무엇이 필요한지를 헤아려야 한다. (계속)

소학섭

(사)청소년미래연구 이사장, 로뎀나무국제대안학교 이사장 겸 교장, 다문화전문가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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