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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정동영·외교 조현·국방 안규백, 전북 출신 3인 안보라인 발탁…그들의 숨겨진 이야기

1996년 4원 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재경(在京) 전주고 동문회. 가운데 정동영 의원은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닷새 전에 치러진 15대 총선 전주 덕진구에 출마, 전국 최다 득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오른쪽 장영달(張永撻)의원은 전주 완산구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왼쪽 필자는 동아일보 노조위원장이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후보자…”태생부터 통일의 사명을 안고 태어난 인물”

[아시아엔=김기만 전 동아일보 기자, 전 청와대 춘추관장] 통일, 외교, 국방 3개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모두 전북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정계 안팎의 화제가 되고 있다. 인구 173만 명의 소규모 광역자치단체에서 한꺼번에 이처럼 핵심 안보라인을 배출한 일은 유례없는 사례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오래 된 사진. 47년 전인 1978년 4월 5일 식목일. 당시 MBC 신입기자이던 정동영 후보와 그의 절친 2 명(후에 권만학 경희대 교수, 최창호 한전 부장) 및 필자가 정동영 후보와 사귀던 민혜경(당시 숙명여대 피아노과 4학년, 현재 부인) 및 그녀와 기숙사를 같이 쓰던 1~3학년생 3명과 요즘 말로 4대4 미팅을 했다. 장소는 청평호.

정동영(1953년생) 통일부장관 후보자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이미 통일부 장관직을 한 차례 수행했던 인물이다. 그는 2004년 7월부터 2005년 12월까지 장관직을 맡아 개성공단 개설 등 의미 있는 업적을 남겼으며, 이번에 20년 만에 재지명됐다. 그가 다시 통일부 수장에 지명된 것과 개인적인 가족사와 역사적 상징성을 살펴보면 흥미롭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전주고교 때 모습

정 후보자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당일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 고 정진철 씨는 6.25전쟁 당시 공산주의자들에게 억류되었다가 석방된 직후, 자녀 네 명이 행방불명된 비극을 겪었다. 이같은 가족사는 정 후보자에게 통일 문제에 대한 각별한 사명감을 심어주었다. 부친의 유언 역시 “남북문제 해결에 헌신하되, 복수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왼쪽부터 최창호, 정동영, 김기만.

전주고,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MBC 기자와 앵커로 활약했고, 열린우리당 대표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후보를 지냈다. 전주고 후배인 필자는 정 후보자와 전주고 내 65년 전통의 공부모임 ‘라매불(裸魅佛)’에서 함께 활동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 인연 탓에 그의 정치적, 사적인 여정에 대해 잘 아는 셈이다.

정 후보자의 의원실 벽엔 TER(유라시아 횡단철도) 노선도가 걸려 있다. 그는 TKR(한반도 종단철도)와 TSR(시베리아 횡단철도), TCR(중국 종단철도) 등의 연결망을 통해 남북 통합의 물리적 기반을 닦는 일에 매진해왔다. 장관 퇴임 이후에도 그는 <개성역에서 파리행 기차표를>(2007), <10년 후 통일>(2013), <한반도 통일 이야기>(2014) 등 통일 관련 저서를 출간하며 학문과 실천 양면에서 통일 이슈를 붙들고 있었다.

그가 남북관계라는 동토에 다시 ‘뜨거운 물’을 붓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왼쪽부터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 필자, 정동영.

조현 외교부장관 후보자-“국제무대 경험 두루 갖춘 외교통”

조현(1957년생) 외교부장관 후보자 역시 전주고 출신으로, 정동영 후보자보다 4살 어리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외무고시 13회(위성락 현 국가안보실장과 동기)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해 1·2차관, UN 대사, 에너지자원대사 등 외교부 요직을 두루 거쳤다. 오스트리아와 인도 대사를 역임한 그는 사실상 ‘전방위 외교통’으로 불릴 만하다.

1996년 2월 자리를 같이 한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왼쪽 세번째)와 오른쪽 김기만

그는 컬럼비아대 석사와 프랑스 툴루즈대 박사과정을 밟은 정통 학구파로, 영어와 불어에 모두 능통하다. 국내 한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며 외교 이슈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고, 빠른 판단과 합리적 사고로 주변의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외교관 치고는 드물게 ‘소신파’라는 평도 듣는다. 과거 정부 시절 주변에서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냐”는 걱정을 들을 정도로 원칙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하지만 동시에 중요한 순간엔 ‘입 지퍼’를 닫을 줄 아는 절제력도 갖췄다.

그가 풀어야 할 과제는 가볍지 않다. 북미·북핵 외교는 위성락 실장이 총괄하겠지만, 미·중 갈등, 한일 관계, 한-EU 및 제3국 외교의 균형 회복이라는 중책이 그의 앞에 놓여 있다. 2025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2026년은 한불 수교 140주년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외교 이벤트도 많다.

‘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이 어떤 결과를 낼지는, 조 후보자의 전략과 리더십을 주목한다.

안규백 국방장관 후보자

안규백 국방부장관 후보자…”20년 외길 국방위, 최초 문민 국방수장”

안규백(1961년생) 국방부장관 후보자는 전북 고창 출신으로, 중고교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뒤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운동권 출신도 아닌 그는 1988년 평화민주당 당보 기자로 정치에 입문해 이후 20년간 당직자 생활을 거쳤고, 2008년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

그가 국회 상임위로 국방위를 택한 것은 당시로선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선거에 별 도움도 되지 않고, 금전적 이득도 없는 ‘기피 상임위’였지만 그는 한 번 정한 길을 끝까지 걸었다. 놀랍게도 그는 이후 5선 동안 단 한 번도 상임위를 바꾸지 않고 국방위만 고수했다.

19대 총선 당시 김부겸 전 총리가 포기한 경기 군포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전략공천에서 밀리자, 묵묵히 기다렸다. 그 인내는 보답받았다. 서울 동대문 갑에 사고가 발생하자 당은 그를 전략공천했고, 이후 5선까지 내리 당선되며 ‘국방위원장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신사적이고 온화한 성품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20년간 축적된 군 관련 정보력과 네트워크에 있어선 국회 내 독보적인 존재다. 향후 최초 민간인 국방부장관으로서 군 개혁, 군 기강 확립, 부정부패 척결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기만

바른언론실천연대 대표, 김대중정치학교 대외협력본부장,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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