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3대 고백록’으로 불리는 세 권은 4세기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참회록>이다. 시대와 문화는 다르지만, 이 세 책은 모두 인간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아 성찰의 깊이를 보여준다. <아시아엔>은 이들 세 사람과 저작을 먼저 소개한 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 등을 정리해 나갈 계획이다. <편집자>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겨울을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의 고백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으로 문학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겼지만, 정작 자신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방황했고, 극심한 우울과 자살 충동까지 겪었다. 그 고백을 담은 작품이 바로 <고백록>이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라는 수식어 이면
톨스토이는 1828년, 러시아 야스나야 폴랴나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가정교사에게 교육받았으며, 16세에 카잔대학교에 입학했지만 곧 자퇴했다. 이후 1851년 군에 입대했고, 복무 중 틈틈이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그 시기 그는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연이어 발표했다.
제대 후 유럽을 여행하며 교육이론에 관심을 보였고, 귀향 후 농민 자녀를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하지만 1862년 결혼과 함께 교육활동을 접고 본격적인 문학 창작에 몰두해 <전쟁과 평화>(1869), <안나 카레니나>(1877)를 발표한다.
그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나, 실제로는 젊은 시절부터 신앙에 회의를 품었다. 그는 “기도문을 외우고 교회에서 배운 대로 행동했지만, 그 모든 것이 공허한 형식에 불과했다”고 회고한다.
“나는 잘 살고 있는데 왜 죽고 싶지?”-정신적 위기와 <고백록>
<안나 카레니나> 집필을 마칠 무렵, 톨스토이는 치명적인 내적 갈등을 겪었다. 세상적으로는 성공했지만, 삶의 목적을 잃은 그는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극단적인 상태에 이른다. 그가 51세였던 1879년, 바로 그 시점에 그는 자신의 정신적 고뇌를 솔직하게 기록한 <고백록>을 집필한다.
<고백록>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톨스토이의 절망과 회심, 그리고 새로운 신념의 기원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 담긴 철학적 고백이다. 그는 욕망과 허영에 찌든 청년기를 반성하며, “거짓말, 폭력, 살인, 음행 등 수많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사람들은 나를 도덕적인 사람이라 불렀다”고 적는다.
그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유명해지고 부유해지기 위한 욕망에 사로잡혔다”며, 젊은 시절 자신의 글쓰기마저도 명성과 돈을 위한 수단이었음을 인정한다.
회심 이후… ‘기독교 무정부주의자’가 된 톨스토이
정신적 위기 이후, 그는 예수의 가르침에서 삶의 해답을 찾는다. 제도 종교로서의 러시아 정교회를 부정하며 개인적 신앙에 기반한 기독교적 무정부주의를 주장한다. 이는 훗날 간디, 마틴 루서 킹 등에게도 영향을 끼친 평화주의 사상의 뿌리가 된다.
그는 회심 이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 윤리적 주제를 다룬 단편들을 발표했다. 또한 <이반 일리치의 죽음>, <크로이체르 소나타>, <부활>(1899) 등 후기 걸작들에서도 삶과 죽음, 구원의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1910년, 82세의 나이에 집을 떠나 영적 피난처를 찾던 도중 아스타포보 간이역에서 폐렴으로 타계한다.
오늘 우리에게 <고백록>이 던지는 질문
<고백록>은 단순한 종교적 참회의 글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목적과 죽음을 둘러싼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 치열한 질문이다. 특히 오늘날처럼 우울과 자살, 무기력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시대에, 톨스토이의 정신적 여정은 여전히 유의미한 공명을 일으킨다.
“그토록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삶이 두려웠던 사람.” <고백록>은 ‘성공한 작가’ 톨스토이가 아닌, 인간 톨스토이의 진실한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