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회세계

[임영상의 글로컬 뷰] 美중부캘리포니아 리들리-다뉴바…초기 한인이민 선조들 땀과 눈물, 숨결 곳곳 배어

노동자의 손 조형물. 중부 캘리포니아 평원 지역인 리들리-다뉴바의 땡볕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중노동 대가로 받은 돈을 아낌없이 조국의 독립운동에 기부한 선조들의 손이 바로 저 손이 아니었을까?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지난 3월 10~13일 3박 4일 여정으로 뉴욕에서 LA를 다녀왔다. LA 공항에 도착 후 어바인(Irvine)에서 올라온 한흥수 친구, 또 노스리지(Northridge)에서 합류한 민병용 친구와 함께 중부 캘리포니아 프레즈노 카운티 리들리(Reedley)의 버제스 호텔을 목표로 99번 도로로 들어섰다. 베이커즈필드(Bakersfield)를 지나니 오른쪽으로 멀리 시에라네바다 산맥의 정상에 흰 눈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왼쪽으로 눈을 돌리니 끝없는 지평선이 이어졌다. ‘세계의 과일바구니’ 리들리가 가까이 오자 과수원이 연이어 나타났다.

LA에서 베이커즈필드를 지나 프레즈노 카운티 리들리로 가는 길 (구글 지도 편집)

1920년 3월 1일 다뉴바 3.1절 행진

한인들이 미 대륙으로 들어간 것은 샌프란시스코를 통해서였다. 도산 안창호 선생도 1902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는데, 당시 미국 사회는 동양인에 대한 인종 차별이 심할 때였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를 기점으로 캘리포니아 및 다른 지역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는데, 철도 지선이 연결되고 과일과 채소의 주산지인 리들리와 다뉴바(Dinuba)에 한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10년대 초반부터 바로 이웃한 리들리-다뉴바 지역이 중가주(중부 캘리포니아주) 한인사회의 중심이 되어갔다.

하와이 노동계약(1903~04년)을 끝낸 한인들, 중국 상해를 거쳐 들어온 한인 인삼 장수들, 또 이후 하와이가 아니라 바로 샌프란시스코로 들어온 ‘사진 신부’들도 다뉴바 한인사회의 구성원이 되었다. 1912년 10월 새로운 한인타운으로 발전한 리들리-다뉴바에 다뉴바한인장로교회가 세워졌다. 중가주에서 설립된 최초의 한인교회인데,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2008년 4월 12일 옛 한인교회 자리와 1920년 3.1절 퍼레이드가 열린 다뉴바의 메인스트리트 두 곳에 ‘다뉴바 애국선열 기념비’를 헌정했다.

다뉴바 애국선열 기념비에서. 왼쪽부터 민병용, 필자, 한흥수

우리 일행은 먼저 옛 다뉴바한인장로교회 자리 교차로(North O Street와 South Alta Ave)에 도착했다. 1976년 미국에 와 힘든 이민자 삶을 살았던 민병용 친구가 ‘노동자의 손’ 조형물을 가리켰다. 중부 캘리포니아 평원 지역인 리들리-다뉴바의 땡볕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면서 중노동 대가로 받은 돈을 아낌없이 조국의 독립운동에 기부한 선조들의 손이 바로 저 손이 아니었을까? 정말 자랑스럽고 감사했다.

1920년 3.1절 1주년 퍼레이드 현장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사진이 새겨진 기념비에 도착했다. 1919년 3.1운동은 한반도를 넘어 디아스포라 한인사회에서도 일어났다. 3월 13일 중국 용정, 3월 15일 미국 하와이, 3월 17일 러시아 연해주(우수리스크, 블라디보스토크), 4월 14일 미국 필라델피아. 1910년 8월 한일합병 이후 해외독립운동의 중심지인 연해주 고려인 사회에서 1920년 3월 1일 3.1절 1주년 행사를 개최되었는데, 태평양 건너 캘리포니아 다뉴바에서도 시가행진이 개최되었다. 다뉴바 3.1절 기념행사는 한인들이 리들리-다뉴바를 떠나 LA 등지로 떠난 후에도 프레즈노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다뉴바에서 3.1절 재연행사를 개최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간호복 차림으로 대한부인구제회(1919년 8월 설립) 한인 여성들이 대형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을 시위행진을 생각하니 울컥해졌다.

105년전 3.1운동 1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한국 간호복 차림의 한인들

이승만 대통령과 안창호 선생이 머물었던 버제스 호텔

숙소인 버제스 호텔에 도착했다. 미국의 시골 동네 호텔로 시설은 떨어졌으나 ‘100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안창호 선생이 머물렀음을 기념하는 동판을 2008년 4월 12일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헌정해 호텔 출입문 옆에 새겼다. 숙소로 사용하는 2층으로 올라가니 19호실 출입문 오른쪽에도 두 분의 사진과 약력 소개를 한글과 영문으로 적었다. 우리는 호텔 출입문과 또 19호실 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리들리 버제스 호텔, 출입문에 새겨진 동판, 19호실 앞의 한글/영문 안내문

2008년 4월 중가주한인역사연구회가 다뉴바의 두 곳에 애국선열기념비를 세울 때 다뉴바시가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또한, 리들리시도 버제스 호텔에 동판을 새기고 안내 패널을 부착하는 한편 또 구글 지도에 Korean Heritage Pavilion으로 나오는 리들리 한인 역사기념각 설치에도 적극 협력했다. 현재 리들리-다뉴바 지역에는 한인이 살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리들리-다뉴바는 과거 한인들의 역사를 기꺼이 자신들의 역사로 받아들이며 기억하고 보전하고 있다. 근래에는 매년 8.15일 행사에 샌프란시스코와 LA 한인사회도 함께 모여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역사는 결코 역사연구자뿐만 아니라 학생과 일반 시민 모두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계속)

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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