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정일의 시선] “베를 짜는 며느리가 한울님이다”

해월 최시형

사람, 한 사람이 다 저마다 다른 우주이고 한울님이다. 그 한울님을 성스럽게 섬긴다면 세상에 평화와 사랑이 넘쳐날 것이다. 그 섬김을 온몸으로 표현한 사람이 수운 최제우의 제자 해월 최시형이었다.

해월은 김연국에게 후사를 맡겨놓고 충청도 보은의 장내리로 내려간 뒤 보은과 청주 그리고 진천 지역을 순회하며 도인들을 가르쳤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진천에 있는 금성동을 다녀오던 해월이 청주 북이면 금암리에 있는 서택순(徐垞淳)의 집에 들렀다. 그는 청주에서 포덕 하여 수많은 도인들을 입도시킨 사람이었다.

내가 어느 날 청주 서택순의 집을 지난 일이 있다. 마침 그의 며느리가 베를 짜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상을 물리고 나서도 베 짜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해월이 서택순에게 물었다. “지금 베를 짜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 서택순이 대답했다. “며느리가 베를 짜고 있습니다.” 해월은 웃으며 말했다. “며느리가 베를 짜는가, 한울님이 베를 짜는가.”

해월의 물음에 서택순은 어리둥절하였다.

어찌 서군뿐이겠느냐. 무릇 천지는 귀신(鬼神)이요, 귀신은 또한 조화(造花)다. 그러나 귀신이니 조화니 하는 것은 다만 일기(一氣)에서 유래할 뿐이다. 그러니 어찌 사람만이 하느님을 모셨으랴. 천지만물이 다 하느님을 모셨으니 이천식천(以天食天)은 우주의 상리(常理)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오직 하나의 생물이라도 함부로 살해한다면 이것은 하느님을 상해하는 것이다. 대자대비하여 만물에 순응하는 길에 능통해야만 참된 이치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도가(동학을 믿는 집)에서 어린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하느님의 뜻을 상하는 것이므로 삼가야 한다. 사람이 오면 ‘손님이 왔다’고 말하지 말고 ‘하느님이 강림하셨다’고 말하여라. 사람의 마음을 떠나서 따로 하느님이 없고, 하느님을 떠나서 따로 마음이 없다, 이 이치를 깨달아야만 도(道)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이 모두 저 푸른 하늘을 우러러 보고 그것을 하느님(天)이라고 믿는데, 이것은 참된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듣고 말하는 것이나 나의 굴신동정(屈神動靜)이나 이 모든 것이 귀신(鬼神) 아닌 것이 없다.

우리 선생님(수운)의 가르침을 내가 어찌 꿈엔들 잊으리오. 선생님은 어느 때, ‘하느님을 섬기듯이 사람을 섬기라(事人如天)고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나는 비록 부인(婦人)과 소아(小兒)의 말이라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알고 여기서 배울 것은 배운다. 지금 자존(自尊)하는 사람이 많다,’ 1885년에 행한 <해월법설>에 실린 글이다.

‘한울님이 배를 짜신다’는 해월의 이 말은 노동의 성스러움을 강조한 설법이다.

고금으로부터 신분제 사회에서는 노동은 천민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겼던 것을 해월은 가장 고귀한 것, 사회를 구성하고 문화를 창조하는 수단이자 가장 성스러운 일로 보고 다음과 같은 강론을 하였다.

해월이 이 세상에서 높이고자 했던 것이 며느리만이 아니었다.

“도를 닦는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다. 내외가 화합하지 못하고 어찌 한 집안을 화하게 하며 (…) 부인이 혹 남편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남편은 정성을 다하여 절하라. 온순한 말로 이해시키며 한 번 절하고 두 번 절하면 비록 도척과 같은 악한이라도 반드시 감회하리라.” <천도교서>에 실린 글이다.

이 세상의 절반인 여자들에 대한 강론도 많이 한 수운은 ‘사인여천’의 중요성과 실천에 대해서 강론을 했는데, 그의 제자인 해월 최시형이 스승의 사상을 올곧게 실천한 것이다.

신정일

문화사학자, '신택리지' 저자, (사)우리땅걷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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