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의 시선] 주한미군 대폭 감축?..전략적 자충수 될 수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5월 22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이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지형에 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현재 약 2만8500명 규모의 주한미군 병력 중 4500명 가량을 괌을 포함한 인도태평양 내 다른 전략 요충지로 재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 국방부는 즉시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과 관련해 한미 간 논의된 바 없다”고 밝혔지만, 국내외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적지 않다.
이번 구상의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속적인 주한미군 감축 의지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는 첫 임기 당시에도 주한미군 철수·감축을 여러 차례 거론했으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두 번째 임기에는 이를 본격 추진할 가능성이 더 커졌다는 것이다.
트럼프식 주한미군 감축론은 크게 세 가지 목적 아래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첫째 ‘전략적 유연성’ 강화와 인도태평양 재배치
최근 하와이에서 열린 AUSA LANPAC 2025 심포지엄에서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주한미군이 “광활한 인도태평양 작전 공간에서 거리의 제약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며,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베이징에 가장 가까운 미국의 동맹이며, 일본과 중국 본토 사이에 있는 섬이자 정박된 항공모함과 같은 존재”라고 언급했다.
이는 주한미군을 단순한 북한 대응 전력으로 한정하지 않고, 인도태평양 전략의 일부로서 광역 작전에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려는 미군의 의지를 반영한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미 국방부는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강조하며, 주한미군 일부를 유사시 역외 작전에 투입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왔다.
둘째 북한과의 협상용 ‘당근 카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세 차례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비핵화 협상을 시도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2기 집권 시도 중인 트럼프 캠프가 주한미군 감축을 다시 꺼내는 것은 향후 협상에서 레버리지로 삼기 위한 목적도 있다. 주한미군 감축을 ‘안보보장’의 일환으로 포장해 북한의 비핵화 유도 수단으로 삼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이 방안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많다. 북한은 그간 주한미군 문제를 체제안전 보장과 연계해 왔지만, 실제 행동 변화로 이어진 적은 없었다.
셋째 방위비 협상 및 통상 압박 카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에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구해 한미동맹 내부 긴장을 초래했다. 주한미군 감축 카드가 다시 등장한 것은 향후 협상에서 한국 측 부담을 높이고, 나아가 무역 및 관세 협상에서도 유리한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이다.
전략적 판단의 실패 가능성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결국 미국 스스로에게도 전략적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주한미군은 단순히 북한에 대한 억지력을 넘어, 중국과 러시아까지 겨냥한 ‘인계철선(tripwire)’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군 전략가들 사이에서도 주한미군 2만8500명 규모는 동북아 안보 균형을 위한 최저선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다.
미국이 주한미군 감축 또는 재배치를 단기적 협상 수단이나 비용 절감 차원에서 추진할 경우, 한미동맹의 신뢰는 물론 역내 동맹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일본·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동맹국들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에서 가지는 상징성과 억지력을 중요한 안보축으로 보고 있다.
정치적 계산과 군사적 실리 사이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결코 단순한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미동맹의 본질이자, 인도태평양 안보 구조의 핵심축이다. 단기 협상의 수단이 아닌, 장기 전략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