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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군인’ 김경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북극의 별’이 되다

청산리 대승 이후, 만주의 독립군 부대들은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후퇴를 거듭했다. 1921년 겨울, 영하 40도의 혹한 속에서 1천km가 넘는 거리를 걸어 연해주 지역으로 이동했다. 그해 6월에는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비극으로 알려진 자유시참변(흑하사변)이 벌어졌다. 일본이 러시아에 조선 독립군의 무장해제를 요구했고, 독립군 내부의 주도권 다툼이 더해지며 비극이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는 일본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무장해제를 명령했고, 이에 저항하던 독립군을 이르쿠츠크파 공산당 계열 부대가 공격했다. 독립운동 세력 내부에서 벌어진 총격전이었다.

김경천과 김에리자베따

김좌진과 이범석 부대는 이를 피하기 위해 북만주로 철수했고, 홍범도와 이청천 부대는 무장해제를 수용했지만, 이에 반대한 수백 명이 희생되었다. 외국 땅에서의 무장투쟁은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김경천은 1922년까지 5천여 명의 병력을 모아 고국 진공을 꿈꾸며 두만강 인근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나, 이는 그의 마지막 무장투쟁이 되었다. 그해 가을, 일본군이 철수하자 소비에트는 대일 관계를 고려해 한인 유격대의 무장해제를 명령했고, 연해주의 투쟁은 막을 내렸다. 김경천은 귀향하며 언젠가를 기약했다.

1923년, 그는 상하이에서 열린 국민대표회의에 참석했다. 상하이로 향하는 길은 위험천만했지만, 위장과 기지를 발휘해 무사히 도착했다. 이 회의는 미주, 만주, 연해주 등지에서 온 120명의 독립운동가가 모인 자리였다. 그는 지청천, 조소앙 등과 감격의 재회를 했고, 자유시참변의 경험을 전한 지청천은 소비에트를 경계하라고 경고했지만, 김경천은 이를 깊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의는 정파 간 갈등으로 결렬됐고, 김경천은 회의 정치에 큰 실망을 느꼈다.

그는 연해주로 돌아가 수찬의 한인촌에서 잠시 휴식기를 보냈고, 이 시기에 자서전적 기록인 “경천아일록”을 집필했다. 1925년, 아내 유정화가 6년 만에 위험을 무릅쓰고 연해주로 그를 찾아왔고, 재산을 정리해 금과 엔화로 교환해 오도록 부탁했다. 그해 6월, 아내와 세 딸, 여동생까지 탈출에 성공해 우수리스크에서 가족과 재회했다.

1926년부터 1932년까지 김경천은 소비에트 협동농장 책임자로 일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그는 다시 무장투쟁을 준비했으나, 소비에트는 그를 정보분석관으로 임명하고 가족과 함께 하바롭스크로 이주시켰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국제사범대학에서 일본어와 군사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소비에트 내부에서 한인 사회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그 역시 ‘인민의 적’으로 지목되었다.

1935년부터 시작된 대숙청의 물결은 한인 사회도 덮쳤고, 김경천은 체포되어 정치범으로 투옥되었다. 1939년 석방되었지만, 가족은 이미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되어 있었다. 그는 15일간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족을 찾아갔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공동체를 재건했다. 하지만 다시 꼴호즈 책임자로 추대되자, 그는 또다시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1940년 간첩죄로 체포되었고, 이듬해 북극권 유형지 코틀라스로 이송되었다.

코틀라스는 악명 높은 강제노동 수용소였다. 그는 그곳에서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1942년 1월 사망했고, 이름 모를 공동묘지에 묻혔다. 가족에게는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통지만 전달되었다.

한편, 북한의 김일성과 비교하면 김경천은 훨씬 이전부터 항일투쟁을 전개했고, 진짜 김일성 장군이라는 평가도 있다. 김성주는 만주와 백두산에서 유격대 활동을 하며 김일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소련의 후원으로 평양에 입성하여 권력을 잡았다. 반면 김경천은 끝내 소비에트를 믿고 남았다가 숙청당했다.

1953년 스탈린 사망 이후 복권 절차가 시작됐고, 김경천 역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1990년대 들어 소련의 개방으로 그의 삶은 다시 조명되었고, 가족은 1998년 광복절에 초청받아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KBS에서 다큐멘터리로 방송되었고, 증손녀 김올가는 한국에 입국해 사직동의 조부 거주지를 찾아 표석을 세웠다. 김경천의 별은 이제 서울의 밤하늘에서 빛나고 있다.

이택순

전 경찰청장, '이택순의 실크로드 도전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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